바다리는 서해에서도 해식지형의 빼어난 풍광으로 인기가 높은 곳으로
특히 바다가에서 바라보는 해넘이의 놀라운 장면은 이를 보는 모든이의 기억속에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는다는건 주지의 사실이다.
또하나 방문객을 즐겁게 하는건 게르마늄 바지락의 산지라는 명성에 있다.
바다리에서 나는 바지락은 그것으로 칼국수를 하면 바다의 맛을 함유한 풍성함으로 다른 조미료가 필요 
없고 모든 찌게의 맛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신비의 식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바다리 어촌계장 정망근은 오늘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바지락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지만 그가 올리는 비윤리적인 부수입은 짭잘한 수준을 넘어 엄청 나기 
때문이다. 그는 1년전 그의 아버지로 부터 어촌계장직을 물려 받았다.

정망근의 아버지 정자수는 바다리에서 뼈대 있는 가문으로 몇대째 선장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어
많은 존경을 받아왔다.
꽃게와 오징어의 많은 수확으로 부를 축척해온 정자수는 근처 해안에 유조선의 좌초로 발생한 오염과
중국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수입이 줄어 들자 이를 타파 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우선 해변으로부터 오염원을 제거 하는 작업이 주민들과 유조선 업체의 노력만으론 어렵자 바다시에 제안
하여 전국민적으로 바다리를 도와 주자는 캠페인 운동을 벌여 많은 효과를 낳았다.
이당시 바다리의 바다를 살리자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많은수의 일반인들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 해변가는 정화작업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몇년뒤 바다리는 많이 깨끗해 졌고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름오염 극복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제 바다리와 바다시 공무원사이에서 정자수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이지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때 오염됐던 바다리의 갯벌이 깨끗해 졌다는 기막힌 생각에 착안하여 정자수는 선주로서가 아닌
또다른 사업에 도전하게된다.
그것은 게르마늄 바지락 사업이었다.
그는 바다리 주민들과 바다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사업설명회를 개최하여 일사천리로 사업권을 획득하고
바다리 어촌계를 설립 계장자리를 차지 하였다.
바다리 주민들의 일정지분 투자와 정부의 보조로 재원을 마련하고 17만 제곱미터의 갯벌에 게류마늄이 
함유된 자갈을 살포한후 바지락 종패를 식재 하였다.
종패를 뿌린지 일년후부터 바지락 채취가 시작 되었고 오염에서 청정지역으로라는 캠패인 덕분에
소비자의 지극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후 몇년간 지분을 투자한 바다리 주민들의 소득이 몇배로 상승하여 어민 소득증대의 모범 케이스로
많은 신문 지상을 오르내린후 정자수의 또다른 계획은 실행 되기 시작 하였다.

정자수는 생각 하였다. 
바다리가 잘살게 된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루어 진것인데 자신에게 돌아오는건 다른주민들
과 비슷한 지분의 소득과 바다리 어촌계 계장님이라는 명예 뿐이었다.
이러한 불만이 커지면서 그의 비상한 머리는 또다시 깊은 생각에 들었다.
그러다 그는 무릎을 탁쳤다. 어촌계는 민간조직이고 바다리 주민중에 자신에게 이견을 말하는 사람이
없는 지금이 이득을 취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걸 깨닷는 순간이었다.
그가 이권을 차지할수 있는 포인트는 외지인의 바지락 채취권에 있었다.
새로운 주민이 바지락 채취권을 얻기 위해서는 공식적으로 입회비를 천 오백만원씩 내야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많은곳이 삼천만원 적은 곳은 칠백만원 정도이니 중간정도의 금액을 총회의 의결로
정한 사항이었다.
바다리는 다른곳에 비해 수익이 훨씬 많으니 채취권을 얻고자 하는 외지 사람들의 요청이 쇄도를 하고 
정자수에게 로비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바다리 주민이 아닌 외지인인 경우 바지락 채취권을 획득 할 수 없었다.
정자수는 외지인의 경우도 어촌계 계장의 판단하에 특수한 경우에 허가해줄수 있도록 정관개정을
총회에서 실행 하였다.
물론 강경파들은 주민의 수입이 준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를 하였지만 대다수는 전국민이 도와준 은혜를
갚아야 하므로 국가 유공자 또는 장애인등에게 문호를 개방 해야 한다는 정자수의 의견에 맞섰다가
불이익을 받을수 있을까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찬성표를 던지고 말았다.
그후 바다리에서 바지락을 캐는 날이면 주민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 나더니 그수가 거의 
주민수에 육박하였다.
그들은 정자수가 타당하다고 하여 받아들인 국가유공자, 장애인관련 채취자들 이었다.
외지인들은 공식적으론 가입비 천오백을 냈지만 뒤로는 정자수에게 천오백을 더낸 사람들이었다.
총 삼천만원의 가입비를 낸사람들이었다.
정자수의 개인통장에는 불과 1~2년사이에 백억 가까운 돈이 모아 졌고 바다리의 논과 밭을 수시로
사들였다.
바다리 사람들 사이에는 정자수의 땅을 밟지 않고는 이곳에서 살수 없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바다리 원 주민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그들은 아무리 정자수가 바다리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지만 이러한 전횡까지 눈감아 줄수는 없다고
반발 하였고 대표단을 꾸려 정자수와 바다시에 항의 방문을 하기로 하였다.
타지역거주 바지락 채취권을 가진 사람들 역시 불만이 커졌다.
채취권을 신청할때는 가구당 년 억대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수 있다는 감언 이설에 삼천만원에 가까운
가입비를 납부 했지만 실상은 늘어난 채취권에 그 수익이 1/3로 줄었기 때문이었다.
이들도 대표를 꾸려 정자수에게 항의 하기로 했다.

정자수 어촌계장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는 또다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문제는 수익이 줄었다는게 핵심 포인트이기 때문에 17만 제곱미터 넓이의 바지락 채취 갯벌을
채취권자들이 천만원씩 부담하여 그배인 32제곱 미터로 늘려야 하고 그것을 정부로 부터 허가 받을수 
있는 사람은 본인 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주민 대표들이 이사태를 만든 정자수가 또다시 모든 권한을 행사하려는것 아니냐고 반발을
하자 그는 또다른 묘안을 생각해 냈다.
어차피 이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본인 밖에 없는데 자신을 못믿겠다고 하니 모든걸 처리한후
본인이 물러나는 조건으로 차기 어촌계장을 자신의 아들인 정망근으로 하고 차기 총회에서 추인하
라는것이다.
채취권자들이 따로 모여 열띤 토론을 한결과 바지락 갯벌을 확장하는건 정자수의 관공서 영향력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그렇게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 졌다.
하지만 문제는 어촌계장의 권력 세습이었다.
그들은 차기 총회에서 정망근을 추인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정하면 되지 않냐고 의견을 모았다.

정자수의 로비 능력은 대단했다. 바다리 해수욕장의 면적을 줄여가면서까지 하는 갯벌 확장 사업을
정부로부터 승인 받아 내고 자신은 약속대로 어촌계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정망근이 후임계장으로 취임을 하였다. 물론 강경파들이 총회에서 추인을 거부 하기로 했으나
몇몇 친 정자수 인사들이 모여 회의록등을 날조한후 총회없이 추인하고 말았다.

정망근이 어촌계장을 물려 받으면서 수익구조가 개선되는듯 했다.
하지만 갯벌이 확장되면서 관리가 어려워 게르마늄 바지락의 품질이 저하되었고 다른 어촌계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바지락이 개발되면서 바다리 바지락의 수요가 많이 줄어 버렸다.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 가는데 정망근은 그아버지에 그아들이라고 사리사욕을 채울 궁리만 하였다.
정망근은 아버지 정자수와 상의 없이 바지락 채취권리의 일부를 수산업체에 넘기는 조건으로
받은 수십억원을 착복했다.
아직까지 쌩쌩한 아버지 정자수의 영향력이면 이정도 가지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정망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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