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의 특이점은 또다른 퇴사가 있다는데 있다.
물론 가장큰 파고는 2014년의 퇴사였을 것이다.
2번의 입퇴사 물론 작은 입퇴사는 제외하고 그 두해의 감정적 소견을 적어보기로 했다.
가장큰 공통점이라면 나에게 퇴사는 공허함을 안겨주고 있지만
국가적으로도 세월호와 탄핵이라는 커다란 시련이 닥친 해였다.
2014년에는 회사를 퇴사하고 안산으로 계약직을 2달 정도 다닌적이
있었는데 그앞 고대병원으로 엠블런스가 연이어 드나들던것이 
기억에 떠오르고 안산시에서 축제를 벌이기 위해 심어논 튤립이
쓰임새를 잃고 허망하게 피어있던 모습 또한 아련히 떠오른다.
2024년은 머나먼 출퇴근 길을 전동차를 타고 지겹도로 다니면서
이것의 종말은 언제 일까를 뇌까리며 다니고 있다.
그리고 탄핵이라는 단어가 공중파와 신매체인 유투브를 
도배하고 있다.
또한가지 2014년의 퇴사가 장거리 레이스중 뜸금없이 도발적으로 다가 왔던 반면에
2024년의 퇴사는 입사시부터 공사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어렴픗하게라도 그끝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음이 
다르다 할것이다.
2014년의 퇴사는 중년의 나이에 책임감에 짓눌려 안개속을 헤메는 느낌이었다면
2024년의 퇴사는 장년의 나이에 그간의 경험으로 어느정도 또다른 루트를 알고 
있다는데 다름이 있을것이다.
아무튼 그러나 저러나
퇴사라는 점은 자의든 타의든 언제나 허망함을 나에게 
안겨주는듯 싶다.
그래도 힘을 내서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또다른 길이 나에게
다가온다는것도 진리일지니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만한
일도 아닐것이다.

인생에서 정규직의 순항을 멈춰서면서
시작된 계약직은 새로운 도전일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잘 버텨왔다.

하지만 새로운 나이라는 장벽이 늘어서면서
이를 어떻게 타파할것인가가 관건이 되겠다.
그동안은 1년, 2년, 3년을 거치면서 
내가 다시 새로운 생활을 할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매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수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건설 경기가 좋치 않고
나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발생했다.
계약 종료 기간이 다가올수록
초초해 질수 밖에 없는 이유라 하겠다.
이번에도 잘헤쳐 나갈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
다른 분들을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순항들을 하고 있던데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와 줄런지
기대와 조바심이 파형을 이루고 있다.

근무처 가까운곳의 도서관을 찾아 보기로 하면서
CACS 작은 도서관을 찾아봤지만 생각 보다 실망감만
커졌으므로 그다음으로 근무지와 멀지 않은
일봉동 작은도서관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봉명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차돌로를 건넌후 아나 힐링 뷰티존 골목길로 직진을 했다.

창고를 보면서 우회전하여 공원을 옆으로 하여 
단독주택가를 걸어 갔다.

신가네 장어집에서 좌회전을 하면
일봉 식자재마트가 보이고 그 맞은 편에

일봉동 주민자치센터가 있다.

이곳 1층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창문을 통해 안을 보니 도서관 책들이 보이고 
그 통로 중앙에 아줌마가 서서 왔다 갔다 하더라.
여기서 도서관 안에 들어가려던 마음을 접고
그대로 되돌아 오고 말았다.
이는 무슨 물건을 사러 갔을 때 종업원이 따라 다니며
물건을 추천해 줄때 느끼는 압박감을 싫어 한다랄까
큰 도서관도 아니고 작은 도서관에 들어서 열람대에서
책을 본다면 분명 그 아줌마는 힐끔힐끔 보며서
평일 대낮에 왠 어른 남자가 이런곳에서 책을 보고 있지란
생각을 할수도 있을거란 점이
압박감으로 오기 때문이었다.
아...오호 통제라 왜 근처에 제대로 된 도서관이 없단 말인가

3년간의 근무처 계약종료일이 다가오면서
원래도 특이사항이 없던것이 더욱더 무료한 면이 도드라지고 있다.
하루를 지내기가 힘겨워 질즈음 문뜩 떠오른것이
도서관이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앉아서 책속에 빠져 보는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것 같아 근무지 주변의 도서관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수원에 비해서 이상한점이 있다.
큰도서관은 몇개 없고 작은도서관이라고 명명된 것들이
많이 검색 된다.
특히나 근무지에서 걸어갈수 있는 가까운곳에는 일반 도서관이
보이지 않고 CACS 작은 도서관과 일봉동작은도서관이 
있을 뿐이다.
가장가까운 CACS작은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걸어서 8분정도
걸린다.

CACS작은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루트

봉명역 화장실도 들를겸해서 한번 걸어 가보기로 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 오는 다사랑 칼국수 앞을 지나쳐
걸음을 재촉해 본다.

이곳은 공사로 인하여 일방통행 표시가 지워진 탓인지
역주행하는 차량들로 시비가 잦아 지고 있는 곳이다.
좀더걸어가니 봉명역이 보이고 그옆으로 CU편의점이 보인다.

이곳에서 특이한건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앵무새 2마리를
어깨에 앉히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올겨울 들어 꽤나 추운날이었는데 강아지 산책 시키듯
새들도 산책을 시키는 건가 하는데 그남자는 CU편의점으로
들어가 버린다.
좀더 앞으로 걷다 새사람교회에서 우회전을 했다.

다시 맥주나라에서 좌회전을 했다.

몇발짝 걸음을 옮기니 CACS라고 표시된 건물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건물이 도서관이 과연 맞을까 싶다
요양보호사, 학점은행제등 도서관이름은 없고 동떨어진
명칭들만 표기되어 있다.
그사이에 용도가 바뀐것인가?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 보니 커피 1500원 옆으로 낡은 책이 
일부 진열 되어 있다.
아 도서관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실망스럽다. 다른곳을 찾아 봐야 겠다.

12월 6일 금요일 아침에 핸드폰을 언뜻보니 지하철 파업이 
극적으로 타결 돼서 아침 출근 혼잡은 없다고 했다.
잘됐다고 졸린눈을 비비며 화서역으로 향했다.
역사에 들어서며 전광판을 본 나는 눈을 의심하며 아니
왜 서동탄 가는 전동차만 있고 천안 신창은 없지를
반복해서 자문 했다.

화서역사 모습

분명 6시 25분에 신창행 전동차가 와야 하는데
다시한번 전광판을 봤는데 서동탄행만 3대가 있다고
표시돼고 있다.

천안 신장행은 없고 서동탄 행 만 표시되고 있다

일단 전광판 사진을 찍어 출근시간이 늦을수 있다고
동료에게 톡을 보내 놓았다.
마냥 기다릴수는 없고 카드를 찍고 플랫폼으로 들어서
차가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계속해서 
서동탄행 전동차만 들어온다.

정차하는 서동탄행 전동차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전광판에 천안행이 표시에
나타났다.

40여분을 기다린후 천안행 전동차가 표시되었다

천안행은 봉명역 까지 안가서 천안에서 내려 다시 신창행으로
갈아타야 하지만 하는수 없다.
일단 따뜻한 전동차 실내는 굳은 몸을 녹여주여 괜찮았다.
의외로 자리도 수원역에서 앉을수 있었다.
그렇게 졸면서 서정리에 왔을때 맞은편에 신창행 급행
전동열차가 들어온다고 했다.

서정리역에 신창행 전동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급하게 일어서 전동차를 갈아타고 천신만고 끝에
지각했지만 직장에 들어 설수 있었다.
신창행 급행 전동열차를 타면서 느낀건 왜 이 이른 출근시간에
노인들이 이리 많고 그들은 교통약자석에 앉지 않고 일반좌석에
앉아 가는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학생과 직장인들고 이름 아침에 일어나 피곤한텐데 그들의
행동 때문에 세대가 갈등이 심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가 몰려왔다.😒

이전 겨울에 잎이 다 떨어지지 않아 왠지 포근해 보이는 
단풍나무로 와서 쉬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이른 아침 매서운 출근길에 졸린눈을 비비며 보는 
전철역사안의 그 나무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그래도 그때는 내 자신이 편하게 쉬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올해는 어째서인지 그곳에 누워 출근하지 않고
쉬었으면 한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지금 출근하는 곳에 계약 종료가 되므로
다른곳으로 옮기기전 쉬게 될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타들어가는 촛불의 심지처럼 조바심이 나고
익숙함이 끝난다는 불안감에 설레발을 치며 벌써 그곳에
가곳 싶지 않아 지고 있다.
왜 그럴까
아쉬우면 하루라도 더 가고 싶을 텐데 왜 가기 싫을까
그곳에서 오만정이 다떨어져서 일까.
젊은 애들은 지들끼리 삼총사라 몰려다니면서 술마시고
밖에 모여서 수다만 떨고
나이좀 먹었다는 인간은 기침에 코를 풀어 대면서도 
남을 배려하지 않고 마스크한번 끼려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출근하는 자는 인사해도 모른척해
나도 아는척을 안하고 있으니 정이 떨어 질만도 하다.
그래도 그래도 왠지 서글픔이 드는건 어째서일까.
세월이 지나가고 나이가 들어감에서 오는 자괘감일까
아니면 익숙한것이 끝난다는 불안감일까
아무튼 연말에 이러나 저러나 싱숭생숭한 마음 주체할수 없다

이자수는 변태다.

그자신을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럴수 밖에 없게 된 단초는 일년여가 지나고 있다.
그는 북수원의 랜드마크로 불리고 있는 대형건설사 작품인
뷰아파트 34평에 살고 있다.
물론 다들 아시고 계시다 시피 이곳은 작은 평수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심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에대한 대표적 이슈로 근처 초등학교의 수용인원이
많지 않은것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작은 평수에 사는
아이들을 다른 학군의 학교로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4,50평대의 입주민이 많았다.
결국 힘에 굴복한 교육청은 은연중에 그내용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회사에서 지쳐 돌아온 자수는 와이프 팽숙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
팽숙: 당신은 아직도 알지 못하는것 같아
자수: 회사 힘들게 갔다온 사람한테 뭘 모른다는 걸까 참 궁금하네
팽숙: 우리 아들 망근이가 가까운 초등학교 놔두고 저멀리
버스타고 학교를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는거 말이야
자수: 무슨 말이야 20평대 아이들만 그리 배정되는거 아니었어?
팽숙: 헐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네 
옆 초등학교가 40,50평대 아이들만 해도 넘쳐나서 30평대까지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단 말이야
자수: 그럴리가 있나 지난해 까지만 해도 안그랬잖어
팽숙: 그러니 자기가 빨리 평수를 늘려 가야 한다고 내가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이야기 했잖어
그말을 듣던 자수는 실망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후로 과부하의 회사일과 팽숙의 잔소리가 계속되면서
자수의 머리속은 지진이 일고 있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아질수록 이자수는 팽숙에게 질펀한 
부부관계를 요구 했지만 팽숙은 변태라며 단칼에 거부하고 말았다.
자수부부는 그렇게 각방을 쓰게 되었다.
오늘도 잠자리에 누워 잠이 오지 않는 자수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쓰리썸, 69등의 낯뜨거운 단어를 입력한다.
그렇게 침을 질질흘려가며 야릇한 내용에 심취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에너지를 쏟아 내고 잠에 들수 있었다.
그런 일상이 반복 되면서 자수는 자신에게 좀더 과감한 행동의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밤중인 2시경에 홀딱벗고 동네를 활보하는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훔쳐본다는 스릴과 서스펜스에 쌓인 에너지를 방출하면
그는 새벽에 꿀잠을 잘수 있었다.

이자수의 변태적 기질은 점점더 강해 지고 있었다.
한밤중 보는 사람이 없을때 하던 행동에서 이제는 과감하게
11시대로 옮겨지고 있었다.
얼굴을 모자와 마스크로 가린 이자수는 영웅본색의 주인공처럼 프렌치 코트를 입고 가다
늦게 귀가하는 젊은 여자들앞에서 그걸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기겁을 하고 도망치는게 대부분의 반응이었지만
뭐 볼것두 없네라며 오히려 강하게 이자수를 압박하는
강심장의 여자들도 있었다.
처음엔 당황했던 이자수는 오히려 달아오르는 몸을 주채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에너지를 방출하는 행동을 추가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 스릴을 누리던 이자수가 집으로 돌아 오는데 집앞 멀지 않은 골목에
어떤 여자가 걸어 오고 있었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부분부분이 어두워 정확하게 얼굴은 알아 볼수 없었다.
조금전 쏟아낸 자신의 에너지를 떠올리며 다시한번 변태의 기력이 올라온
이자수가 그녀앞에서 옷을 활짝 펼쳐 보였다.
그순간이었다.
으악 하고 소리치던 여자가 아니 형부 아니세요..
라고 더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소리에 멍하니 있던 이자수의 눈에 팽숙의 큰조카의 모습이 보였다.
조카는 팽숙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고 결혼한 상태로 자주
팽숙의 집에 어린아이를 맡기는 등 자주 드나 들고 있었다.
오늘도 모임이 있었던 조카는 팽숙의 집에 아이를 맡겼다 찾으러 오는 길이었다.
이자수의 집 대문이 벌컥하고 열리면서 
팽숙이 나왔고
조카와 전라의 이자수를 놀란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이자수의 변태행동은 끝장이 난것이다.

그는 변태다
종료



27일 반가운 첫눈이 기념사진이 무색하게
폭설로 변하면서 생쑈를 하고 말았다.

23일 텃밭의 채소들중 추위에 약한 무우는 뽑아서
가져왔지만 그외 배추, 쪽파, 갓등은 
종료일까지 두기로 했었다.
하지만 주중에 내린 폭설후 날씨가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니 가을내 키운걸 버릴수는 없고해서 
저녁에 텃밭으로 향했다.
항상 다니던 주차장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지만
입구에 바퀴자국이 있어 별생각 없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원장님은 가까운 텃밭 농작물의 눈을 치우며 수확하고
나는 좀더 먼 텃밭으로 향했다.
무릎아래까지 오는 장화를 신었지만 눈이 속으로 들어왔다.
텃밭은 햐얀세상으로 텃밭이 어디인지 조차
가늠이 안될 정도 였다.
물통을 기준으로 더듬 거리며 가서 삽으로 눈을 대충 치우고
쪽파, 배추, 갓등을 가져간 바구니에 담았다.
한숨을 쉬며 농작물을 노랑이에 싣고 주차장을 나가려는 순간
출구쪽 얕은 언덕이 바퀴를 썰매로 만들고 말았다.
삽을 꺼내 눈을 치우며 이리저리 차를 몰아 봤지만
자꾸 미끄러지는 통에 나갈수가 없다.
고심끝에 텃밭 관리소로 가 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냥 나오려는데 누구요 하며 사람이 나왔다.
혹시 염화칼슘있냐고 물어 보니 없다고 하며 왜그러냐고 하길래
사정을 이야기하니 대뜸 한다는 말이 
오늘같은날 주차장에 안들어가는게 상식이 아니냐며 
자기는 지금 출근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알아서 
하라며 관리소에서 나가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열받은 상태에서 그 무책임한 발언에 폭발하여
주차장은 당신네 책임이 아니냐 최소한 비탈길 부분이라도
제설을 하던지 아니면 주차장을 폐쇄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지자 자기는 모른다고 나가라고 했다.
그의 하는 말이 너무 괘씸해서 당신 이름 대라고 하며 
내가 위사람한테 민원 넣어서 당신이 한 대응방식을 이야기 하겠다고 하자
투덜거리던 직원이 자기가 상사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거기까지만 보고 나는 다시 차로 왔는데 그사이 원장님은
이리저리 차량을 꺼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는 여전히 미끄러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관리소 직원이 왠일로 미소까지 보이며
쫓아와서 친절하게 다른길을 안내해 주었다.
아마도 상사의 지시가 있었던듯 싶다.
웃는 얼굴에 침못뱉는다고 나도 좀전엔 화내서 미안했다고
말한후 텃밭 주차장을 나올수 있었다.
낭만이라고 생각한 첫눈이 이렇듯 생쇼를 하게 하니
가장 힘든 첫눈의 기억으로 남을 듯 하다.




천안여상로 5거리 주변으로 읽컬어지는

얼떨결에 시작해 3년을 보낸 장소들이
몇년후엔 추억의 장소로 떠오를수도 있겠다.
아마 이곳을 떠나면 다시 올일은 거의 없을것이다.
고뇌에 찬 세월속에 나를 3년간 존재하게 해준
고마운 장소들이니 기억속에 담아 보내고 싶다.
순천향대 새병원 건물과 그 옆으로 신축 아파트가 보이고 있다.

우측으로 몸을 틀어보면 천안역으로 향할때 걷던
도로가 나온다 이곳에는 3년간 회식을 했던 장소들이 있다.

좀더 오른쪽으로 돌면 전철의 고가 도로 밑으로 천안천으로
갈수있는 도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좀더 틀면 로또점이 나오는데 혹시나 하고 
몇번 사봤지만 역시나 였다.

그리고 좀더 틀면 그곳에 여름철 노인분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앉아 있던 다리밑이 보인다.

이장면은 천안천 가로 아직 푸른 잡초들 사이로 낙엽이 떨어져
별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이들을 몇년후에 보면서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에 잠겨 볼수 있을것이다.

직장 출퇴근을 1호선 광역 전철을 이용해 하고 있다.
자동차 이용도 해봤지만 고속도로 이용에 기름값에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리는 장거리다.
요즘 전동차가 태업 중이다.
6시에 출근하는 아침시간대에는 별반 차이없이 다닐수
없어 큰 불편함은 없는데
문제는 저녁시간이 문제였다.
봉명에서 타야 하는데 매번 오후 5시경에 신창에서 오던 전동차가 
거의 5시 30분이 되어서야 도착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도 많아 앉아 가는건 꿈도 꿀수 없다.
수원까지 거의 한시간을 꼬박 서서가니 다리가 비비 꼬여 온다.
집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거진 7시다.
몇일전에 5시 부터 회식을 하고 좀 빠르게 전동차를 타고 집으로
갔을때 보다 늦은 시간이다.
어찌 정상적으로 퇴근을 하는데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갈때보다
늦는단 말인가
물론 철도 노동자들의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 사측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퇴근시간의 지연은 나를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한시간 걸리던 퇴근길이 30여분이 더 걸리고 편하게 앉아서 가던
것이 다리가 저려 오도록 서서 가야 하니 참 불편하기 그지 없다.
거기에 지연되더라도 정확한 전동차 운행 시간을 알수 있으면 
좋을텐데 역사에 가지 않고서는 그 시간을 짐작도 할수 없으니
더욱 답답할 뿐이다.

빨리 철도 노사간에 원만히 합의되어 해결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