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춘식은 성거시에 있는 농협 창구에서 근무하고 있다.
농협 암보험에 관심있는 민원인을 상대하느라 바쁜 오전을 보낸 춘식은 늦은 점심을 찾아
시내를 돌고 있다 갑자기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게실에서 미친돼지 삼겹살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동료 직원이 찾아 왔다.
-직원:문대리님 연순이가 찾아왔는데요.
연순이는 문춘식의 6살난 딸아이의 이름이었다.
-연순:(직원옆으로 들어오며) 아빠!
-춘식:(깜작 놀라며) 연순아! 너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그때 배달 삼겹살이 도착하고 춘식은 연순과 함께 그것을 허겁지겁 먹었다.
-춘식:(다시한번 묻는다)연순아 어떻게 이먼곳까지 찾아왔어?
-연순:응! 아빠 보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데려다 줬어.
-춘식:그게 무슨소리야? 
춘식이 말하고 있는 사이 한성시에 있는 그의 장모한테 전화가 왔다
-장모:(다급한 목소리로)문서방 큰일났어. 연순이가 없어졌어..동내를 몇바퀴 돌았는데 찾을수가 없어
-춘식:장모님...연순이 여기 와 있는데요..
-장모:(안심하며)그래~ 그 어린것이 어떻게 거기 까지 갔다니..
그것이 영특해서 전에 지 엄마하고 다니던걸 기억하고 찾아갔나보다..
-춘식:(목소리를 높혀)장모님 그게 말이 돼요 연순이 이제 6살이에요..한성시에서 여기 성거시까지는 버스로 한시간 가까이 걸리고 또 택시를 타야 농협까지 올수 있는데요
장모:그래 말이 그렇긴해도 전에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애기들이 아빠 근무처 찾아가는
걸 본적이 있어..
-춘식:오마이갓! 장모님..그건 익숙한 전철을 탄거구요 거기다 카메라맨과 작가가 따라 다니는거라구요
애기들 혼자만 다니는게 아니예요.
장모님 연순이가 어떻게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예요.
앞으론 연순이를 잘좀 봐주세요.
-장모:(한숨쉬며 풀죽은 목소리로) 알았어. 잘보고 있었는데 잠깐 베란다 청소하는틈을 타서 나간
모양이야.
문춘식이 오후 6시 퇴근을 한후 성거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들러 연순이 좋아하는 배달치킨을 시켜
배불리 먹인후 한성시 장모님댁으로 갔다.
자신의 장모에게 연순이 다닐 어린이집과 자신이 직장에서 늦을 경우 봐줄 보모를 구할때까지만 
1~2달 더 연순이를 데리고 있어 달라고 이야기 하며 다시는 혼자 나다니지 않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성거시로 돌아 왔다.
그런일이 있은 몇일 동안은 수시로 연순에게 아빠가 보고 싶다고 떼쓰는 전화를 받았으나 주말이면
보러 갈테니 그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어린딸을 달래느라 춘식은 애를 먹었다.

그렇게 그일이 잊혀져 가던 어느날 연순이 또다시 아빠를 찾아왔다.
이번에도 춘식은 딸아이를 달래며 다시 장모님한테 돌려 보냈다.
그후에도 그런일이 반복되자 춘식은 휴가를 낸후 연순과 성거시의 아파트에서 하루밤을 보내며 조용히
물어봤다.
-춘식:연순아...너 정말 여기까지 어떻게 오는거니...이길을 다 외우고 있어서 오는거야?
-연순:아빤...나 여기 어떻게 오는지 몰라 그리고 돈도 없어...
-춘식:그럼 어떻게 오는건데...정말 엄마가 데려다 준다는 거야?
-연순:응..내가 할머니 집에서 아빠 보고 싶다고 울고 있으면 엄마가 문열고 들어와서 아빠한테 가자고
데려다 준단 말이야
여기서 춘식은 은근히 난 화를 가라 앉혔다. 이전에도 이런 문제로 거짓말 하지 말라고 야단을 쳤지만 울고불고 떼 만 늘었기 때문에 그는 목소리를 낮춰 다시한번 물었다.
-춘식:연순아..아빠가 다시한번 이야기 해줄께..울지말고 들어 엄마는 ...아주 먼데로 병을 치료 하러 갔기
때문에 순이를 만나러 올수 없어...
-연순:아니야...어제도 엄마가 여기로 데려다 줬는데..무슨말이야..내가 아빠 보고 싶다고 울면 꼭 엄마가
나타났단 말이야..

문춘식과 임현자는 늦은 나이에 불꽃같은 사랑을 했고 그 결실로 8년전 어느 꽃피는 봄날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해 어렵다던 인공수정끝에 연순을 나았고...고생끝에 얻어서 인지 임현자는 딸 연순을 무척이나 예뻐했다.
그렇게 4년동안 그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을 준비하던 임현자가 갑자기 쓰러 졌고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그녀는 치료를 위해 딸 연순과 함께 한성시 자신의 어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종합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잠시 상태가 좋아질때면 딸을 데리고 성거시에 있는 춘식에게 오곤 했었다.

임현자가 하늘나라로 간것은 10개월전 함박눈이 오는 날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낙담한 문춘식은 석달여간을 술에 쩔어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러던중 이렇게 살순 없다며 정신을 차린후 연순을 처가집에 맡기고 열심히 일을 하여 다음달이면 과장 승진도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

문춘식은 연순이 엄마가 데려다 줬다는 말을 믿지는 않지만 어린딸이 계속해서 그런말을 하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요며칠 사이에 어린여자아이를 태워다준 택시기사와 버스기사를 수소문했다.
-춘식:기사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구요 이렇게 나오셔서 감사 합니다.
-택시기사:예~지금 한창 바쁜시간인데 쫌 그렇치요..
-춘식:네~그건 제가 보충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건 혹시 그 여자아이를 농협까지 태워 줄때 혹시 누가 같이 탔을까요?
-택시기사:네~ 그여자분 얼굴색이 하도 창백해서 기억이 나요. 
한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데 몸매가 호리호리 하고 쌍꺼풀이 있는 큰눈에 코가 오똑했어요
그리고 택시요금이 오천원이였는데 만원을 주시고 그냥 가버리셨어요.
혹시 거스름돈 때문에 그러시는건가요?
-춘식:(놀라며)아닙니다. 그런건 아닙니다.
(아내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혹시 이사람 입니까?
-택시기사:맞아요..이분이예요..
그 순간 춘식의 뒤덜미를 따라 서늘한 기운이 휘돌아 나갔다.
....
버스기사도 사진을 보고 틀림 없다고 문춘식에게 확인해 주었다.

문춘식은 회사에 일년간의 리프레시 휴가를 신청했다.
회사동료들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데 집안에 무슨 큰일이 있냐고 다들 걱정스런
표정으로 춘식을 바라 보았다.
춘식은 어린딸이 초등학교 들어갈때까지 만이라도 같이 있어주기 위해서라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춘식은 연순을 아파트에서 가까운 어린이 집까지 데려다 주고 마트에서 장을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는 죽어서도 딸을 걱정하고 있는데 잠시나마 딸을 처가에 내팽개 치고 승진욕에 불탔던
자신을 반성하며 이정도 하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문춘식은 이번 주말에는 딸과 함께 아내의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는 유토피아 추모관을 다녀올 예정이다.

*어제밤에 꿈을 꿨습니다. 












 

'무언가에 대한 잔상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륜들 이간하기(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0) 2022.06.13
조상 덕  (0) 2022.06.10
딸같은 며느리  (0) 2022.06.08
초등학교 반창회  (0) 2022.06.07
이따이 이따이 잉어즙  (0) 2022.06.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