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봉명역에서 차돌로 쪽으로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제비표페인트 가게가 나온다.
그 가게의 역쪽 부분은 옅은 그린색의 철망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마당의 한모퉁이에는 거위 한쌍이 텃를 잡고 있다.

열차 손님들이 드나들때면 시끄럽게 꽉꽉거려 싫어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정 고객들은 그들을 반갑고 즐겁게 바라 보다 가곤 했다.
페인트 가게 주인 강병도는 바쁜 와중에도 기스(거위)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바닥을 톱밥을 구해 교체해주고 먹이도 사료만 주는것이 아니고 천안 외곽 논으로 나가 개구리등을 잡아 특식을 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거위들은 털이 빤지레 해지고 아주 건강하여 그 목소리가 봉명역안 열차 대기 손님들에게 까지 들리곤 하여 봉명역장님으로 부터 민원이 들어 오기도 하였다.
사료를 주다말고 거위들을 흐믓하게 바라 보며 강병도는 시간여행속으로 들어간다.

원래 기스들은 페인트가게 소유가 아니었다.
그들은 길건너 오두막에 사는 윤꽃분 할매 소유였었다.
강병도가 봉명역에 페인트가게를 열기전 부터 길건너편엔 윤꽃분 할매의 오두막이 있었고 심심해서 인지 할매는 춥거나 덥거나 할것없이 좁은 마당에 나와 차돌로로 다니는 차와 행인 그리고 강병도의 가게를 흘깃 거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곤 하였다.

그러던중 윤꽃분 할매의 큰아들이 와서 왜 남사스럽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냐고 하며 할매와 큰소리로 대판 싸우고 간 다음날 둘째 아들이 거위 새끼 한쌍을 사가지고와 마당 한편에 목재로 집을 만들어 주고 간후론 할매는 거위들을 돌보느라 집 밖으로 눈길을 거의 주지 않았다.

그렇게 10여개월이 지난 어느날 윤꽃분 할매가 페인트 가게로 찾아왔다.
할매:페인트 가게 사장님 노란색 페인트 한통에 얼만나 합니까?
강병도:할매..어떻게 오셨어요..저희 가게를 다오시다니 반갑네요
할매:그려..내가 매일 나와서 바라보고 해서 귀찮았지..돈이 없어 노인정에도 갈수 없고 다리힘이 없어 산책도 어렵고 해서 그런거니 늙은이 사정을 봐서 사장님이 이해를 좀 해줘..
강병도:아무렴요..저는 할매 맴 다 이해해요. 전에 그것때문에 아드님하고 막 소리내고 싸우실때는 제가 뭐 
잘못해서 그런것 같아 민망했어요.
강병도:그건 그렇고 할매가 페인트 사실일은 없으실것 같은데 ...
할매:없긴 왜 없어..우리 꽉돌이와 꽉순이 집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싶어서 그러지
강병도:아~ 거위 집이 지금은 그냥 나무로만 해놔서 포인트가 없어 보이긴 하죠..
할매:그래 강사장은 그래도 사람 맴이 열렸네...내가 큰아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깟 거위새끼들 집에 무슨 페인트냐고 말도 못꺼내게 하는구만..
강병도:제가 보면 목재용 페인트 3리터짜리 2개 정도 필요하실거 같아요
할매:그게 가격이 얼마나 하노..
강병도:하나에 오만원 정도 하니 두통이면 십만원 합니다.
할매:(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꿈벅 거린다.)강사장 알았네..
그렇게 돌아간 윤할매가 다음날 아침 페인트 가게를 열자 마자 다시 찾아왔다.
할매:강사장...혹시 내 사정좀 봐줄수 있나.
강병도:네..할매 무언지 몰라도 들어 드려야죠
할매:미안하지만 어제 저녁에 우리 둘째 아들 한테 전화를 했는데 개가 이달안에 들른다고 했어..
강병도:네 그런데요
할매:노란색 페인트 두통을 나한테 외상으로 줄수 있나...그러면 우리 둘째가 오면 갚아 줄테니
강병도:아.... 그러세요..드려야죠.. 
강병도:할매가 거위들을 정말 이뻐하시나 보네요. 집을 치장 해주시려고 하는거 보니..
할매:고마우이...그렇고 말고 요즘은 우리 꽉돌이 꽉순이 보는 낙으로 사는걸...
강병도가 노란색 페인트 두통과 붓등을 챙겨 할매 집으로 갔다.
강병도:할매 혼자 페인트 칠하기는 좀 어려 우실거예요..저하고 같이 칠하세요.
할매:이렇게 고마울때가 있나..
전문가 답게 강병도가 기스집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일부분을 남긴후 할매가 직접 작업 할수 있도록 했다.
강병도:오늘 한통을 가지고 작업을 했으니 몇일 말린후 나머지것으로 한번더 칠하면 색상이 아주 예쁠거예요
몇일후 할매가 페인트 가게에 음료수를 사가지고 와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며 페인트 값은 한달안에 꼭
갚을테니 걱정 하지 말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후 바쁜 가게 일을 보다 한숨돌리고 앉아 커피한잔을 마시던 강병도 눈에 119 구급차가 할매집앞에
멈춰서는게 보이고 구급대원이 급하게 집안으로 뛰어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들것에 할매가 실려 나오고 있었다.
강병도가 구급대원에게 물어 보니 할매가 연로하시다 보니 거위집 청소를 하다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된것
같다고 했다.
일주일후 순천향대 병원에서 고관절 수술을 마친 윤꽃분 할매를 강병도가 병문안을 갔을때..할매의 큰아들과 작은 아들이 복도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멀리서 들으바로는 자기몸도 잘 가누지 못하시는 분에게 왜 거위를 사드려 가지고 이런 사달을 만드느냐고
큰아들이 말하자 작은 아들이 집에만 계신데 바깥만 바라다 본다고 난리친건 형이 아니냐 그런 사정을 
어머니가 자신한테 통사정을 해 본인도 하는수 없이 소일거리로 사드린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큰아들이 나 돈 없으니 니가 치료비 다 내라고 큰소리 치고 병원밖으로 나가 버리자 작은 아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까지 듣고 강병도가 병실로 들어서자 다리 고정한 윤꽃분 할매가 너무나 반가워 했다.
할매:강사장 ..병원까지 와주고 너무 고마워...
강병도: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와야죠
할매:그건 그렇고...우리 꽉돌이하고 꽉순이는 잘 있지..
강병도: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돌보고 있으니..
윤꽃분이 한참동안 강병도의 손을잡고 말을 못하고 있다.눈물을 흘리다. 어렵게 말을 했다.
할매:강사장..페인트 값을 갚아야 하는데 지금 내가 말할 처지가 못돼...
강병도:할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할매:그게 아니고..내가 수술후 재활 치료도 해야 하고 해서 한동안 집에 돌아 가지 못할 거야 
할매:그래서 말인데 우리 거위들 돌볼 사람도 필요하고..강사장 페인트 값도 갚아야 하니..
할매:내가 전에 알아 본바에 의하면 거위한마리 가격이 한 오, 육만원 할거야..
할매:그러니 두마리면 십만원이니...그걸 강사장이 페인트 가격 대신에 가져가..
강병도:아이고 할매 더있다 갚으셔도 돼요..그러실 필요 없어요
할매:아니야 강사장이 우리 거위들 이뻐하는거 알아...강사장이라며 아마 잘 돌봐줄꺼야..
할매:우리 큰아들이 보면 거위들을 닭가게에 팔아 버릴거야..강사장 부탁해..
강병도:걱정 마세요..그렇다면 제가 잘 돌보고 있을게요

이런 사정으로 거위들은 강병도의 페인트 가게로 옮겨오게 되었으며 윤꽃분 할매는 수술이 잘 마무리가 돼서 퇴원후 둘째 아들내 집에서 병원으로 재활치료를 하러 다니고 있다고 했다.
강병도는 기스들을 바라보며 윤꽃분 할매가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오길 기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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