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벌초라는건 오롯이 아버님 몫이었다.
어쩌다 따라간들 낫질을 잘하지 못하니 산소에 절하는게 다였으리라..
아버님이 돌아가신후에는 막내 작은 아버지, 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벌초를 다녔다.
그러다가 형님 마저 돌아가시고 작은 아버님은 연세가 있으시고 사촌들은 본인들 부모를 나중에
선산에 안모신다고 하니 하는수가 없었다.
나홀로 벌초를 가기 시작하면서 이를 딱히 여긴 집사람이 같이 가기 시작했다.
나야 같이 가주는것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고 물과 간식을 챙겨 주니 체력적으로도 보탬이
되는데 이것저것 작업까지 하니 괜히 미안한 맘이 드는건 어쩌지 못하겠다.
예초기는 아주 오래전에 외산을 산것으로 십여년을 사용 했으나 1년에 한번씩 쓰다보니
관리가 잘안돼 고장이 잦고 결국 폐기 처분하게 되었다.
그후에 쫌팽이 기질이 있어 인터넷에서 싼 예초기를 구매 했더니..몇번 사용하고 나니
잘돌다가 멈춰버리면 다시 시동이 걸리질 않는다.
다른 분들이 중국산이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모터부는 일제인데 왜그런지 잘모르겠다.
다시 가볍고 오래 쓸수 있다는 충전 배터리용을 구매 했으나 힘이 없어 풀이 잘 잘리지
않고 사용 시간이 30분을 채 넘질 못한다.
21년에는 근무지것을 빌려 사용 해서 할아버님, 아버님,그리고 2개소의 조상묘등 4개소를
깍을수 있었다. 물론 저질 체력으로 옮겨다니느라 죽다 살아 났지만 말이다.
22년에는 광혜원 건재상에서 예초기를 하루당 3만원에 빌려 준다고 하여 휘발유만 사용하는것
으로 벌초를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힘도 좋고 오토바이 엔진오일 냄새도 안나니 아주 좋았다.
22년에 제일 힘들다는 언덕위의 정글 산소를 먼저 갔는데 황당한것이 묘소가 없어져 버렸다.
친척 아저씨(성위)에게 연락 해보니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쪽으로 옮겨 갔고 이미
지난주에 모든 작업을 마쳤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종중으로 묘지 관리가 넘어가서 벌초를 할 필요는 없었다고 했다.
미리 말씀 해주시면 좋았을걸 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코로나등으로 보기 힘들고 해서 알아서 하셨다고 했다.
아무튼 집사람과 나는 체력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고 안심을 했다.
5개의 산소에서 2개의 묘지만 벌초를 하면 되니 어깨가 가벼워 졌다.
아버지 산소로 가서 초입을 막고 있는 칡넝쿨을 제거 하였다.
3천원주고 산 낫이 제역활을 다해 줬고 예초기 또한 잔가지등은 그냥 제거할수 있었다.
다시 할아버지 산소로 가니 엮시나 그늘이 있어서인지 잔디가 다 죽고 강한비에 봉분이
제모습을 갖기 힘든 상태였다.
몇년전에 잔디를 사다 봉분을 다시 조성 했으나 햇볕이 적어 다죽고 이끼만이 남았을 뿐이다.
삽으로 봉분의 모양을 다시 갖추고 시월경에 한지형 잔디라는 톨훼스큐나 파인훼스큐 씨앗을
구해 식재를 해야 겠다고 집사람과 상의를 하였다.
할아버지 산소 밑에 이사오신 분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볼수가 없다.
광해원으로 나오면서 친적분댁에 들르니 나이가 드셔서 부부가 많이 수척해 지셨다.
찾아간것이 반가운지 마당까지 나와서 선산관리에 자주 참석 하라고 하면서 박카스를
주셨다. 사간 음료수 박스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 오는길에 집사람에게 예초기날에 튄 돌에 맞은
허벅지 상태가 괜찮냐고 물으니 멍은 든것 같으나 이젠 아프지는 않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묘비등 부속물을 갖추고자 했으나 그렇게 하면 안돼고 5봉분의 조상묘에
대해서도 모든 부속을 갖춰야 한다고 해서 보류 했었다.
이제와서 보면 내가 퇴직을 한후 조상묘를 모든 정리 해야 하므로 묘비명등 기타 부속물
대신에 가족납골당을 조성하는것이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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