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벽화

 

지은이 : 정한숙
담징은 고구려의 승려로 일본에서 불법과 채화법을 가르쳤다.
일본과 가장 친근했던 국가로는 백제가 있었을 진데 어찌해서 머언 고구려 승려가
일본에 들어가게 됬는지는 궁금한점이 아닐수 없다.
그만큼 불심이 깊고 탱화의 기술이 뛰어났다고 짐작해 보겠다.
수나라 백만 대군의 침략에 조국이 풍전등화인데 어찌 담징은 이 먼 이국땅 일본의
법륭사 금당벽화를 그려야만 하는가...
주지와의 약조로 어떻게든 붓끝을 놀려 보려 하지만 그의 조국에 대한 피끓는 고뇌
는 그를 호락호락하게 놓아주질 않는다.
담장이 일본 승려들의 무위도식하며 7개월을 낭비한다는 눈총에 주지에게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간청을 하지만 노승은 그저 기다려 보자고 할뿐이다.
상심에 시들어만 가던 그의 붓은 을지문덕에 의해 수의 백만대군이 추풍낙엽 처럼
스러졌다는 소식을 접한후 일필휘지를 하게 된다.
그의 관음 보살상에 한동안 그를 비난하던 일본 승려들 조차 심심한 불심을 일깨우게
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 단편은 승려담징의 조국애를 다루고 있다고 할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점이 생길수 있다.
종교적 입장에서 볼때...애국심과 국경을 초월한 자비심의 우선성을 고려해 본다면
어떨까...
담징이야 승려이기전에 고구려 사람이니 당연히 애국심이라는 심란으로 불화를
그릴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랑캐라고 부르는 수나라의 승려입장이라면 어떨까...그들이라면
고구려가 오랑캐가 아니던가...
다시한번 종교적 입장에서 조국이 전화로 불안해서 벽화를 그릴수 없었던 반면...
오량캐 적국이지만 백만대군이 수장된 시점에서 불화를 그릴수 있었다는건
용서 받을수 있는 일일까..
부처님 입장에서 볼때.. 담징아 너는 참 자비로운 승려로구나 하고 표창을 할수
있었을까?
물론 고주몽님이야 참 잘했어요 하겠만...
그리고 또한가지 어려운 관점은 일본 호우류사의 주지는 종교적 불심이 가득한
벽화가 그려져야 할곳에 외국의 승려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에 가득차서 그린 
관음보살상을 보고 깊은 불심이 어찌 일어날수 있었단 말인가..
고구려 입장이 아닌 종교적 또는 주변국 입장에서 본다면 이소설은 상당히 국수
주의적 견해가 섞여 있다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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