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명복을 빌어 드리면서...1

 

5월 31일 화요일 새벽에 집사람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안성 성요셉병원 간호사로 부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왔다.
집사람이 먼저 안성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허겁지겁 아이들 깨우고 대충 옷을 갈아 입은후 몇일전부터 챙겨둔 옷가지
가방을 들고 운전대를 잡았다.
조급해진 마음에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는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본적이

없었다. 

동수원 IC로 향했다.
자꾸만 뜨거운 액체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
집사람이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경부 고속도
로를 달렸다.
안성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운명 하셨다.
05시 41분...
전화받고 택시타고 바로 도착 했지만 이미 돌아가셔서 형님도 임종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간호사가 위급하다고 전화 한후 거의 수분후에 돌아 가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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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어느때 부터
어머님이 감기가 있으시고 가슴이 결려 병원을 다니시며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목소리가 잘나오지 않고 쉰것 같은 현상이 지속돼고 있다고 했다.
집사람이 일반 내과 병원만 다니시지 말고 이비인후과를 가보시라고 했다.
동행했던 형님의 병원에서 머리에 이상이 있을수도 있으니 큰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집사람이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다행히 머리CT 상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처방으로 목소리에 이상이 있는건 좌측 성대가 움직이질
않아서라고 했고 치료를 위해 신약물질을 직접 구매해 오라고 했다.
물론 의료보험이 되질 않아 비싼 가격이었다.
신약물질을 마비된 성대에 주사를 하니 신기하게도 어머님 목소리가 많이 좋아
지셨다.
몇개월이 지난 2011년 어머님이 그래도 가슴이 결린다고 하셨다.
다시 아주대를 찾았다. 몇번에 걸친 힘든 조직검사등을 통해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결국 목소리가 않나오는 원인도 폐에 문제가 있어서 인데도
엉뚱하게 성대 치료만 한 꼴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폐암센터 황박사님의 항암치료가 필요하지만 노인분이라
더 힘만 드실뿐 의미가 없다는 말은 우리를 낙담 시켰다.
결국 진통제와 입맛 좋아지는약, 소화 잘돼는 약만으로 처방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왼쪽 가슴 늑골에 고여 있는 물을 빼기 위해 입원을 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목소리가 정정 하시다.

폐암 말기라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길어야 5~6개월 사실거란 말은.... 
퇴원하시어 수원 집에 계실때 집사람은 어머님 체력을 보강 시켜 드리기 위

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입맛에 맞는 반찬을 해드리느라 신경 쓰고 어머님 모시고 병원 다니느라 힘
을 썼다.
병원에선 나중에 덜고생 하시기 위해서 방사선 치료만이라도 받게 하시는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혼자서 걸으시기 점점 어려워 지시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휴가를 낼수도 없다.
결국 다시 아주대에 입원을 하셨다. 10번에 걸친 방사선 치료로 가슴속 흰
덩어리는 많아 작아 졌다.
이때즘 어머님은 화장실일을 혼자 처리 하시기 힘들정도로 쇄약해 지셨다.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간병인 아줌마와 트러블이 발생하고 빨리 퇴원 시켜
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계셨다.
퇴원해 수원 집에 오니 이번에는 용변을 제대로 처리 못해 발생하는 냄새로
아이들이 난리다.
씻으라고 해도 아픈 늙은이가 다 그런거 아니냐며 고집또한 세어 지셨다.
그러면서 안성 봉산동 집으로 가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하는수 없이 몇일간이라도 가보시라고 안성에 모셔다 드렸다.
그런데 몇일 사이에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가려움증이 발생했다.
다시 아주대에 모시고 갔다.
피부과에서는 폐암센터에서 지어준 약의 부작용 때문일수도 있지만 
조직 검사와 이상한 이름의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어머님의 상태를 봐서는 입원없이 대기하면서 검사를 받는것 자체
가 무척 어려웠다.
하는수 없이 피부과 약만 받고 바로 안성 성요셉 노인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켜 드렸다.
쉬는 주말이면 온가족이 내려가 뵙고...주중에는 틈틈이 집사람
혼자 내려가 어머님이 드시고 싶으시다는 음식을 해다 드렸다.
요셉병원 5층에 있는 병실에 입원하신후 피부상태는 많이 좋아 지셨다.
같은 병실의 할머니들도 폐암 말기인 분이 맞는지 궁금해 하셨다.
바로 나으셔서 퇴원 하실거 같다고 했다.
어머님도 병실 간병인 아줌마가 너무나 마음에 드신다고 편안해 하셨다.
그렇게 두어달이 흐르고나며서 점점 상태가 나빠지시기 시작했다.
일반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지셨다.
왼쪽 가슴은 완전기능을 상실 했다고 했다.
사진상으로도 하얗게 보였다.
갈수록 말소리도 알아 듣기 힘들어 졌다.
그렇게 잘드시던 음식도 못드시고 링거를 꼽기시작 하셨다.
하루하루 방문 할때마다 말씀을 아예 못하시등 상태가 나빠지시고 계셨다.
5월 28일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집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좋다고 이번 주말에 가족
들이 와서 한번씩 뵙고 가는게 좋겠다고 주치의가 말을 했다고 했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좀 일찍 안성으로 향했다.
월요일 까지만해도 문 옆에 계셨는데 창가 가운데 쪽으로 침대를 옮기셨다.
그리고 혈압, 산소포화도, 심박을 체크하는 기계를 달고 계셨다.
말씀은 아예 못하시고 눈동자는 촛점을 잃었다. 말씀을 드리면 약간의
의식이 있으시다는것만 짐작할수 있을 뿐이다.
내일 토요일에는 누나가 병원을 와본다고 했다.
나는 근무를 해야 하므로 일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올라왔다.
다시 내려갔다. 거의 반응이 없으시다. 다행인것은 산소 포화도가
100%에 가깝다. 90밑으로 내려가면 상당히 위험한 상태인것이다.
구포동성당 신부님과 지역장님이 오셔서 병자 성사를 올려 주셨다.
집사람이 자꾸 옆에서 훌쩍거린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어제 이어 누나와 매형이 다시 병원에 왔다.
침상 옆에서 대기를 해야 할거 같다는 집사람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일반 병원처럼 보호자가 대기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과 의사의 이런

상태가 다음주말까지 갈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일단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형님이 가까우니 먼저 오고 우리와 누님이
오는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모두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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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 들어섰다.
어머님 침상으로 커튼이 닫혀 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얼굴을 대하자 왈칵 눈물이 났다.
집사람이 소리내어 울었다.
형님은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방황을 하고 있다.
장례식장은 지하 성혜원을 사용하기로 했다.
정신이 없다. 머리가 멍하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미리 생각 안하것은 아니지만
바보가 되어 버린것 같다.
장례식장 담당자와 가족수를 대비한 호실을 정하고...
회사와 현대종합상조에 연락을 했다.
시간이 있고 가족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하니 아침 식사를 하고 오란
직원의 말을 듣고 옆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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