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킬거리며 상상하기.

제목을 킬킬이라고 했지만 어제 겪은 일은 그거라기 보다는 허걱거리며 상상하기가
적합한 제목일것 같다.
요즘 코레일 직원들이 태업을 하고 있어 전동차가 10분정도 늦는경우가 많이 있다.
어제 퇴근길도 다섯시 십육분차가 이십육분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제밤의 불면증을 해소하고자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오른쪽좌석의 주인이 두번째 바뀌면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
대개의 경우 핸드폰을 오른손으로 잡고 보기 때문에 팔꿈치의 압박이 없어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잠시였다.
전동차 안에서도 검은패딩의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정체불명의 라이트의 얼굴을 슬쩍 보고
눈매가 어둡고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니 하고 잠시 눈을 감고 가다 눈을 뜨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라이트는 본인이 들고온 장신의 첼로가방과 색소폰 가방을 앞에 위치 시키고 있었는데
오른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주머니로 부터 소독약이라고 쓴 비닐에서 거즈를 꺼내서
색소폰 가방끈 주변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대중교통안에서의 통상적이지 않은 그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또다시 소독약을 하나더 꺼내 손등을 닦더니 비닐장갑을 뒤집어 벗고 그것을 뭉뚱그려 아래
어딘지로 내려 놓는다.
갑자기 쎄한 기운이 머리를 감돌기 시작하면서 빨리 일어나서 멀리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망설이다 수원까지는 어느정도 남았지만 오산역에서 일어서 옆칸으로 옮겨 서서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가 왜 그런 찜찜한 행동을 하는건지에 대해 상상을 해보기로 하자.
첫째 그는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결벽증 학생이다.
첼로와 색소폰을 배우기위해서 악기를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물론 학교에다 두고 다닐수도 있겠지만 그럴여건이 되지 않아 수고스럽지만 대중교통으로
가지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연습을 같이 하는 학생중에 기침을 자주 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가방을 들어준다고 만진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소독을 한번 하였지만 그것도 만족스럽지 못해 약국에서 소독약을 사서
가방과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닦고 있다.
둘째 그는 연쇄살인마다.
가방속에는 각종 살해도구가 들어 있다.
그런데 색소폰가방은 그렇타 쳐도 첼로가방은 왜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해야 겠다.
그는 살인대상이 특정되면 그지역으로 숙소를 옮겨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
첼로가방에는 길이가 긴 비닐과 세제등 가지각색의 범인 은폐에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자가차량을 이용하지 않는것은 CCTV등에 추적되는것을
소모품을 현지조달하지 않는것 또한 탐문수사에 걸릴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빠른시간안에 범행을 저지르고 그장소를 이동해야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흔적을 지우기 위해 소독을 하게 된것이다.
셋째 그는 재정적 지원 부족하고 선천적으로 면역력 결핍이 심각한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다.
지방 소도시의 교향악단에 취업하기 위하여 면접시 직접 연주를 해보이려고 악기를
가지고 다닌다.
물론 면역력이 약하니 항시 소독은 기본적으로 필요할것이다.
이렇게 세가지 경우를 생각해 봤으나 모두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그럴듯한 사유가 떠오른다면 추가로 기록을 해봐야 겠다.

킬킬거리며 상상하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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