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운불우는 대개의 경우 정치적 색채가 짙게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할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냥 글자 뜻대로 믿어 보기로 했다.
장마철 일기예보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고 되어 있으나
잠깐 폭우가 내린후 햇볕이 나는 경우가 많아 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구름은 많으나 비가 오지는 않는다.
며칠새 우산을 들고 다니느라 팔이 고생을 했으니
그냥 나가볼 샘이다.
우거진 가로수 밑을 지나갈때면 잎에 고여 있던 물이 간간히
한두방울 떨어질뿐 그곳을 벗어나면 비는 오지 않는다.
걸어가는 길도 배수가 잘돼서 인지 여름 신발이 젖어서
느껴지는 축축함은 없다.
후덥지근 하지만 그래도 아침 공기가 신선하니 씩씩하게
걸어 나선다.
그러다 우산을 펴고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니 비도 안오는데 왠 우산이람"이라며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질책을 해본다.
전동차에 올라 탈때까지 거짓말 보태 빗방울은 한개도 내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자리운도 좋아 편하게 앉아 가고 있었다.
그러다 송탄쯤 다다랐을때 환하던 밖에 어두워 지고 있었다.
안개가 낀것인가를 의심하고있는데
전동차 차창 너머로 물이 번지기 시작한다.

큰일인걸 오늘은 꼼짝없이 봉명역에서 내려 근무처까지
비맞으며 걸어갈수 밖에 없겠는걸 하면서
그래도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에 돈을 투자할 의향은 전혀 없었다.
또다른 맘으론 이제서 평택이니 봉명역에 도달하면 운이 
좋게 비가 맘출수도 있겠지라며 나의 운을 다시한번 시험대에
올려 놓고 있었다.
성환, 직산,두정역에서 정차할때마다 초초하게 밖을 내다보니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봉명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 밖으로 나가 보니
가늘어 졌어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비 안맞을 운은 없는 모양이다.

그저 영화 클래식의 손예진 조인성 처럼 겉옷으로 머리를 가리고
바람처럼 뛰어 갈 뿐이다.
오늘은 밀운불우가 아니라 밀운하우(密雲下雨)가 틀림 없음이다.

 

 

관상찍기 실패 (전동차에서 좌석 차지하기)

11월 14일 오후 5섯시에도 역시나 봉명역에서 전철에 올랐으나
어제있던 빈자리가 무색하게 앉을대라곤 임산부석 밖에 없었다.
하는수 없이 관상찍기로 나이많은 중늙은이 두명과 여학생 두명이 앉아 있는 의자중에 
여학생 두명이 있는 좌석앞에 서서 그들이 일어설꺼라는 희망을 내머리속에 주지 시키고 있었다.
역사가 지날때마다 서서갈 공간들 조차 점점 좁아져 가고 있었다.
성환에서 여학생 두명이 타서 중늙이들 앞에 서자 말많은 늙은이가
자기들은 평택에서 하차할 예정이니 꼼짝말고 앞에 서있으라고 인심쓰는척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성환 여학생들은 편하게 앉아 가게 되었고 나는 다리가 뻣뻣해 지기 시작 하였다.
나는 내앞에 앉아 있는 처음의 여학생 둘을 다시 바라 보았다
왼편은 몸을 앞으로 꾸부리고 핸폰을 보고 있고 오른편 맨끝부분의 학생은 꼿꼿하게 앉아 핸폰만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왼편의 여학생이 이따금 실내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으니
혹시나 오산역쯤에서 하차할 생각인가 하면서 옆에 서있는 중년아줌마에게
좌석을 빼앗길까를 염려하면서 몸을 옆으로 슬금슬금 옮겨갔다.
그러나 인내심의 마지노선인 오산역을 지나서도 그 여학생들이 일어 서지
않자 나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고 문쪽으로 자리를 옮겨 기대서 가기로 결정 했다.
결국에 그 두명의 여학생이 내리는 역은 수원이었다.
오늘은 관상찍기는 완전히 실패한것이다.
종료

17전18기로 들어선 전기감리도 이제 한달 보름이 되어간다.
감리라는 일의 흔적조차 없던 뇌리에 희미하나마 뭉글거리는 형태가
생성되어 갈무렵 그렇게 추웠던 영하의 날씨도 온기가 서려오기 
시작한다.

값어치 이상을 하는 대학병원 구내식당의 식판을 칼국수와 게눈감추듯이
해치우고 네이버지도에서 어제부터 봐온 남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 했다
편도 20분이니 왕복하면 40분이 걸릴터다.

이곳 봉명동 부근의 풍경에는 기시감이 든다.
부분부분에는 최신식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으나 대다수의 주택가는
낡고 어두운 재래식이고 골목마다에는 늙수그래한 남녀가 쓰래기 더미를
어디서나 본듯한 대도시와 같이 뒤지고 있다.
낮은 남산가 무료급식소 주변에 다다르니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을 젓가락으로 
휘적휘적 먹고 있는 한남자와 그옆에 구부정한 여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또하나의 중년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이들을 지나치며 느끼는
이곳의 이미지는 낡고 쇠약한 풍경화다.
조금더 걸어 바라본 산역시 소박한 표고 50미터의 깔끔한 산이 아니다. 
초입은 주택들로 파헤쳐지고 정상에는 때아닌 정자가 보인다. 
실망이 크다.

돌아서 오는길가 냇가에는 추위를 피해 군데군데 모여 있는 물고기떼와
자맥질을 하는 오리가 보이고 전철이 오르는 고가 난간에는 비둘기가 구구
구하며 저기가는 저사람 첫풍경에 너무 실망한것 같다며 지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다.
연두색 잎이 돋아나는 사월이 오면 천덕꾸러기들의 꿋꿋한 수다처럼 이 낡은 
풍경이 좀더 살갑게 다가올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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