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상만
천영: 강동원
종려: 박정민
선조: 차승원

무료한 주말에 누군가 틀어버린 넷플릭스에서 전란이란 한국영화를 보았다.
극장판인줄 알았는데 집에서 볼수있어 아주 편하게 관람을 하였는데
영화 자체는 검술 액션을 보면서 스토리도 어느정도 고구마를 먹지 않아도
돼니 괜찮았는데
짜증스런면이 있다고 하면 그건 권련있는 자들이다.
우선은 박정민의 아버지라는 작자 말이다.
대리시험으로 무과 장원을 해줬으면 약속대로 노비에서 해방 시켜줘야
함에도 그 약조를 헌신짝처럼 가져다 버려 버리니 에휴...
하긴 강동원이 맴이 변해 자신이 대리시험 치렀다고 떠들면 집안이
풍비박산 날것이 두려웠을거 같긴 하다.
또한사람은 선조다.
이 인간은 백성 내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몰래 도망까지 친인간이
돌아와서 한다는 짓이 전란으로 한것 힘든 백성들의 처지를 돌보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핑계로 궁궐부터 어마어마하게 재건 하라고
압박을 하니 우째 이런 사람이 한나라의 왕이란 말인가
마지막에 감독이 선조를 엿먹이는 장면이 있어 통쾌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조선 백성의 고통의 산물이었으니...
그나저나 이 영화에서 비열한 선조역활의 차승원 말이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건지 영화 보는내내 한대 쥐어박고 싶더라

애니메이션 하면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최고로 치는
사람으로서 오래간만에 보게 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만화 영화를
볼라치면 마음속 깊은곳 부터 설레임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라고는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는것 뿐이다.
그의 작품답게 이번에도 주인공 아버지가 군수공장과 관련이 있다.
주인공은 전쟁통에 화마로 어머니를 잃고 외가집으로 옮겨 간다.
여기서 한국사람이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나오는데 아버지가
처재와 재혼을 한다는 점이다.
유교에 찌든 사람이 아니라도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내용이다.
우씨왕후처럼 권력에 눈이 멀어 취수혼을 하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까지는 멋진 배경에 따른 호기심으로 시청을 할수 있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역시나 이상한 건물이 나오고 왜가리가 말을 하면서 부터
이해불가 난공불락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소년과 왜가리

갑자기 새엄마 즉 이모가 실종되고 주인공은 왜가리에 끌려
이세계로 들어선다.
센과 치히로에서의 검댕 처럼 와라와라가 나오고 그걸 잡아 먹는
펠리칸이 나온다 그러더니 배를 타고 큰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 나오고
사람 잡아 먹는 앵무라니...
또한 어린엄마가 나타나고 오래전에 실종됐다고 하는 증조부가 나와 주인공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계다는 말을 한다.
난 지금도 이게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아무리 편집은 자유분방하고 구성이 산만하고 난해하다 해도
도대체 무얼 말하자는건지 모르겠다.
집사람 말대로 그냥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새장가를
가는데 대한 어린 주인공의 정신적 방황 정도로 치부하면 되는건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이해 안가는 부분이 있다고 할정도면
그림이 예쁜거 말고 그냥 대단하다 심오하다로 넘어가기에는
나로서는 정말 어렵고 어려워 수박 겉핡기를 할수 밖에 없다고 해야겠다.
제목도 미국판의 소년과 왜가리가 더 산뜻하지 않을까 한다.

*유투브를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관통하는 명쾌한 통찰력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대단한 분들이 계시던데 만화영화 한편을 보면서

                그렇게 골머리를 썩혀야 하는건지 전 잘 모르겠네요

뭐 대학입시 문제 푸는것 같네요       

 

화성 당성은 삼국시대 처음 축성된 산성이다. 

홍천하는 고구려 영류왕 때 당성에 정착하고,

신라시대 문무왕때 당성백, 효소왕때 당성후를 지냈으며, 
그후 당성이 남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본관을 남양으로 정한 
남양홍씨들에 의해 흙을 쌓아 축성된 산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백제 시대 때 당항성으로 지칭되었다. 
"당성"이란 명칭은 475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의 한성을 점령하면서, 
남진 정책으로 화성 일대가 고구려에 속하면서 
당성군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51년에 신라 시대 진흥왕이 757년에 '당은군'으로, 
829년에 군사적 거점으로 '당성진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 
삼국통일 전쟁기와 통일신라 시대에 당성은 바다를 건너 
중국과 실크로드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당항성은 신라가 선진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결정적인 문화의 창구 기능을 하게 되며, 
신라가 막대한 군사적 비용과 백제와의 맹약을 깨뜨리면서 
이곳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라가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이 창구를 확보하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 할 정도로 삼국시대 역사의 무대에서 당항성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무역항인 당항성을 통해 드나들었던 선진문물 중에서 당의 불교 문화는 중요한 전래요소다.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당성은 1,993년에 지표 조사가 되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1,998년과 
2,000년에 2차에 걸쳐 발굴 조사로 화성 당성이 1차 성과 2차 성의 복합 산성임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의 1차 산성은 산이 정상을 중심으로 쌓는 태뫼식 산성이고, 
통일신라 시대 에 축조된 2차 성은 계곡부를 포함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지금까지 6 차에 걸친 발굴을 통해 당성에서는 명문 기와, 토 제만등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당성 발굴은 지금도 진행 중이 며, 고고학적인 조사 결과로 보자면, 
당항성은 화성시 남양에 있는 당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현재 남양에 있는 당성은 바로 당항성 내의 군사적 보호 시설로서 축조된 성이 틀림없다. 
현재는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 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 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 에 약간 남아있다.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현재는 화성시에 속하지만,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백제 시대 당항성에서 현재 화성 당성으로 25회나 바뀌었다. 
※(당성→화성 당성) 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종목 : 국가사적 문화재 217호[당성 및 사적비] 지정되어있다.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 국방 / 성 / 성곽
시대 : 삼국시대.
소재지 : 경기 화성시 서신면 삼만리 산32번지.
출처 : 한국민속문화 대백과 저자/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화성시 "남양, 당성의 유래 한국 문화유산청 홈페이지 참조.

남양홍씨 본관은 옛 수원화성 남양 (현재 화성시 남양읍) 
고구려 27대 영류왕 (재위 618-642)이 당나라에 공자 맹자와 
같은 훌륭한 덕예 문학의 선비파견 요청함에, 
당나라 태종께서 문화 사절 당 학사 8명을 파견했는 데, 
그중에 한 분이 선 시조 홍천하(洪天河)님이시다. 

STB 상생방송 참조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 
(공자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인간과 사회의 심리, 도덕, 정의를 논하는 학문으 로 유교보다는 넓은 범의)
을 가르치고, 문화(文化)를 널리 개척하며 정착한 곳이 
당성(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사적 217호) 이다.
그 후 연개소문의 난을 당하여 신라국 지리산 덕산동으로 피신하여 
신라 선덕 여왕 때 홍 학사는 유학발전에 큰 공을 세워 조정에서 
큰 덕으로 덕산 촌주에 명하고 국사로 예우했다. 
문무 왕 때 당성 백에 봉 해지고, 신무왕 때 태자태사로 추대했으며, 
효소왕은 당성 후로 삼았다. 
그 후 당성이 남양으로 개칭되니 후손들이 남양을 본관으로 삼고 번성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당성 홍 씨는 신라 귀족의 반열에 서서 문무 을 깨우치며 풍속을 다스리는 지도계급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우암 송시열이 지은 남양 유생통문 이라는 글을 보면
"신라오주가 학사 공을 스승으 로 받들고 교화를 보급한지 50여년 만에 
정교는 성행하고 후학은 대통하 였다. 
김유신 임강수 설총 김총수 등이 선생의 후학들이며 공자묘를 창설 하였다"고 하였으며, 
목은 이색은 "신라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예악, 시, 서 (예법과 음악, 시와 글씨)의 
발전으로 많은 군자가 나왔으니, 우리나라의 공자라 할 수 있으며, 
조선조에서는 십재명벌로 손꼽혔다.
[남양대보(南陽大譜), 한국씨족연구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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