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단공포증(trypanophobia)이 있는 사람은 회의 도중 무심히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펜 때문에 생각을 정리 할수 없어 그필기구를 내려 놓아 줄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한다.

먼저 직장에서는 4명이 모여서 관리단에 관한 문제로 회의를 자주 했었다.
그중 달마 닮은 분(이분 사진을 걸어 놓으면 모든 불길한 액운과 집안의 수맥을 차단해줄것 같다.)
이 회의를 주관하고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이분이 바로 선단 공포증이
있어 다른사람의 연필등을 옆으로 밀어 버리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 나를 빙그레 미소
짓게 하고 있다.

그 올라간 입고리를 타고 초등학교 1학년 교실로 나를 찾아가면 재미있게 수업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누군가 전해준 불주사 뉴스의 공포감은 나의 모든 감각을 마비 시키고 있다. 
그렇듯 어린 마음을 졸이고 있다보면 교실 앞문이 서서히 열리며 공포의 불켜진 알콜병이 들어왔다.
나의 이성은 이미 반쯤 허공을 떠돌고 저뾰족이를 도저히 허용할 수 없다는 자의식이
강력히 거부할것을 종용받고 있다.
그곳에 남은 이성은 없다. 뾰족이를 안맞기 위해 강력히 저항하며 이를 제지 하는 이들을 향한
쌍스러운 언어만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때 가끔 위상황을 우스게 처럼 말씀 하셨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을수 없다.
왜 그랬을까..주사바늘에 대한 공포감은 현재도 남아 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의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초등학교 입학전까지만 해도 어머니 손을 잡고 읍사무소옆 건물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갔고 맞고나면 어머니가 업어주던 기억은 있지만 이렇게 까지 뾰족이에 대한 반이성적 행동은 없었다.
그당시 왜 그랬냐고 계속 추궁하면...
초등학교 1학년에 선단공포증이 최대로 발현됐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말끝을 흐릴수 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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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 남쪽으로 30여분 거리에 발안이라는 곳이 있다.
그지명이 낯설지 않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군데 갔다와서 내 주특기(선반)를 살려 아버지가 친척 형님벌 되는 분께 부탁하여 들어가 다니던
부평의 코리아 스파이서라는 회사가 있었다.
자동차 부품관련 회사로 꽤나 괜찮은 중소기업으로 기억된다. 
그 공장을 2년여 다니다 절삭유의 기름독으로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 그만두고 1년여의 독한 공부 끝에 
들어간 통신회사에서 첫 발령을 받은곳이 바로 발안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로 우리 부모님에게는 최고의 직장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니 그 기쁨은 
더할나위 없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다 그렇듯 즐거움은 잠시뿐 그 속에서 지지고 볶고의 인생살이를 하다보면 답답해
질때가 있다.
그 잘난 회사를 3~4년 다니다 보니 내부 배치에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 했다. 
통신으로 들어가 사람을 전기실에 배치 하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이때 마침 4급과장(원래 과장은 3급이다.)으로 온 사람이 곽노흥 이라는 인간이다.
언제나처럼 낙천적으로 몇년만 더 있으면 자기는 3급 달고 2급 달고 국장 그이상을 할수 있다고
떠벌리기 일수인 사람으로 생기긴 미련곰투가리 같았으나 실상은 천하의 모사꾼이었다.
와 이사람 능력이 엄청 좋은가..우리같은 사람은 답이 안보이는데 어찌 저렇게 자신만만 할수 있을까?
그자가 온지 얼마 안돼 나는 그자의 감언이설에 따라 전기실에서 사무실로 발령을 받아 가게 되었다.
자 이제 나도한계급 승차를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뒤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던 어느날 곽노흥이 자기 차 타이어를 바꿔야 한다며 나를 태우고 나갔다.
그때만 해도 너무나도 순진해서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타이어가 헌것도 아닌것을 광폭으로 바꾸는것을 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는거지 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의문을 품었을 뿐이었다.
그 사무실에는 나와 동기지만 몇달 늦게 발령 받은 천지석이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곽노흥이 나에게 사무실가서 열심히 일을 하면 보장해줄것 같이 말하던 
승차를 가지고 나와 천지석 사이를 오가며 경쟁을 시켜 무언가 잇속을 챙기려 했던것이다.
아마 내가 사회생활의 속물 이었으면 그 타이어값을 냈을 거고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천지석을 앞질러 승진을 했을것이다.
그런던중 곽노흥이 다른곳으로 발령이 나고서도 나와 천지석의 승진문제를 총무과장과 연락 하면서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는걸 알수 밖에 없었다. 
몇일밤을 고민하다 국장을 찾아가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제가 먼저 왔으니 승진을 먼저하는게 순리가 아니겠냐는 말을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국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후에도 지속적으로 곽노흥은 농간을 부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총무과장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이런자에게 돈을 줄것인가 아니면 승진을 포기할것인가에 대해 고뇌를 하다 스트레스가 쌓여
분노를 누를길이 없을 즈음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는 이런 천하에 모리배 자식 (부하 직원의 승진을 빌미로 돈을 받아 제 사리사욕을 채우고 위사람들에게 상납하여 자신의 부귀영화에 최선을 다하는 자)을 용서할수 없다는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당신 내가 승진 안해도 상관없지만 자꾸 전화해서 농간을 부리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신같이 높은 자리까지 올라기실분이 소탐대실 하시지 말고 나같이 말귀를 못알아 먹는 사람도 있으니
이번은 군말말고 빠져 계시라고 했다."
그런 몇일이 지난다음 내말에 당황 했는지 곽노흥이 대리님 대리님 하면서 전화를 했왔다.
인생이 즐겁고 탄탄대로인분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순 없었던 모양이다.
몇달뒤 나는 승차를 할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왜그리 참을수 없었을까?

내가 25년을 다닌 직장에서라면 할말이 정말 많다.
그렇치만 전부를 한꺼번에 말할 수는 없고 단칼로 어느 한부분을 짤라 그시점에 떠오르는 울화통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그 직장은 원래 기술직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승진한 몇일뒤 뜸금없이 영업 부서로 발령이 났다.
본부라는 곳에 전화를 해 내가 왜 기술자인데 영업부서로 발령이 났는가를 물어 보니 거기서도 잘 모르고
이번에 대대적인 승진과 조직 개편으로 많은 인사 발령이 있는 것으로 안다는 정도의 말뿐이었다.
평택 영업 부서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2년여를 했다.
그당시 평택 영업 부서는 몇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평택, 송탄, 안성, 안중 등 지역을 기반으로 팀을
구분했다) 문춘식 그 인간은 1팀의 팀장으로 있었다. 
1팀은 수석팀으로 각 개인별 판매량을 할당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고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직원들에게 많은 할당 물량을 강제 떠맡게 하였다.
물론 기술부서에 있을때도 말도 안되는 대량의 판매를 개인들에게 할당 하기 일수 였고 그 근거에 의거
고과와 승진이 좌지 우지 됐었다.
하지만 그것과 영업부서에서의 판매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는것이다.
영업부서가 체질에 맞지 않으니 다시 기술 부서로 옮겨 줄것을 상급자에게 수도 없이 요청 해서 결국
자리를 옮기 게 됐다. 
다시 돌아온 기술부서에서 일을 했다. 
해당일이 지역단위에서 본부 단위로 통합 되면서 평택에서 수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자리를 옮기는 날 총 4명중 나만 일을 마무리 하느라 남아있었고 3명은 일찍 수원으로 떠났다.
현장 개통 지원을 거의 마치고 퇴근 무렵즘 문춘식 저 개같은 인간이 갑자기 욕지거리를 하면서
파쇄기를 이사 가면서 가져갔다고 나한테 한바탕 큰소리를 내었다.
나는 가능한 정중하게 부장님 그건 제가 관리하는게 아니라 다른 파트에서 가져 간거니 저는 알수
없다고 여러번 말을 했는데도 욕과 화풀이를 쏟아 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미친놈의 새끼야 내가 한게 아니라는데 왜 나한테 지랄이냐고 하고 싶었지만
직장이라는 위계 질서가 있으니 최대한 꾸욱 눌러 참고 버텼다.
그놈은 지가 팀장을 하다가 부장으로 승진을 하여 마케팅 부서 전체를 총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파쇄기가 없어 졌다고 하니 직원들 앞에서 가오 세우려고 나를 타케팅 삼아 욕받이를 한것이리라.
추후 말을들어보니 문춘식이가 파쇄기를 가져간 부서의 장에게 전화로 지랄 염병을 하여 돌려
받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땅딸하고 꼼슬머리 곰보끼의 얼굴을 한번 뭉개주지 못한것이 울화통으로 남아있다.

팬데믹으로 위험한 시기이다.
어쩔수 없이 대중교통수단인 전철을 이용하고 있다.
수원에서 천안까지 자가용운전 대비 전철이 
약간의 시간과, 1/6정도의 비용, 편의성은 아주크게 잇점이 있다.
편의성이라함은 1시간 남짓의 핸폰 보기 또는 눈감고 휴식취하기등을 말한다.
출근시간이 일러서 피곤하지만 퇴근시간은 여유롭다.

화서역에서 10여분을 걸어 집으로 가는길에 서호천이 흐르고 있다.
그 십여분은 사람, 오리, 물고기의 삶의 질에 대해 누가 더 나은것인가에 대한
잡념에 사로잡히는 시간이다.
AI와 영하 10도의 추운날에도 물속에서 물질을 하는 오리떼를 보면 안쓰럽다.
하지만 그런 차가운 물속에서 생사의 위협을 받는 물고기를 생각해보면 오리가 삶의 질이 
좀더 나은것이 아닌가

사회생활이 위험할수 있는 시기에 무작위 사람들과 섞여서 드나들수 밖에 없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는 어떤것일까..그들보다 낫다고 할수 있는것일까..

17전18기로 들어선 전기감리도 이제 한달 보름이 되어간다.
감리라는 일의 흔적조차 없던 뇌리에 희미하나마 뭉글거리는 형태가
생성되어 갈무렵 그렇게 추웠던 영하의 날씨도 온기가 서려오기 
시작한다.

값어치 이상을 하는 대학병원 구내식당의 식판을 칼국수와 게눈감추듯이
해치우고 네이버지도에서 어제부터 봐온 남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 했다
편도 20분이니 왕복하면 40분이 걸릴터다.

이곳 봉명동 부근의 풍경에는 기시감이 든다.
부분부분에는 최신식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으나 대다수의 주택가는
낡고 어두운 재래식이고 골목마다에는 늙수그래한 남녀가 쓰래기 더미를
어디서나 본듯한 대도시와 같이 뒤지고 있다.
낮은 남산가 무료급식소 주변에 다다르니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을 젓가락으로 
휘적휘적 먹고 있는 한남자와 그옆에 구부정한 여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또하나의 중년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이들을 지나치며 느끼는
이곳의 이미지는 낡고 쇠약한 풍경화다.
조금더 걸어 바라본 산역시 소박한 표고 50미터의 깔끔한 산이 아니다. 
초입은 주택들로 파헤쳐지고 정상에는 때아닌 정자가 보인다. 
실망이 크다.

돌아서 오는길가 냇가에는 추위를 피해 군데군데 모여 있는 물고기떼와
자맥질을 하는 오리가 보이고 전철이 오르는 고가 난간에는 비둘기가 구구
구하며 저기가는 저사람 첫풍경에 너무 실망한것 같다며 지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다.
연두색 잎이 돋아나는 사월이 오면 천덕꾸러기들의 꿋꿋한 수다처럼 이 낡은 
풍경이 좀더 살갑게 다가올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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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완전 봄날씨예요 들뜬 마음에

유사산악자전거 타고 행궁 한바퀴 돌러갔다가 남성컷 오천원에 혹해 머리깍고..

그런데 만원주고 동네 미장원에서 자른것보다 이쁘게 후덕해보이는 아주머니가 해주시네요.

그리고 몇일전 티브에 나온 못골시장 칼국수집에서 삼천오백원에 배부르게 먹고도 만원에서 천오백원이 남네요.

이집 이른시간인데도 사람 많네요.

공기좋고 이쁘게 머리깍고 배부르고

행복한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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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일제 근무를하면서 경력을 쌓고 있는데..
푸른 꿈을 꾸는것도 한계가 있는것인지 비번날이면 속으로 부터
올라오는 뭐가 모를 허전함이랄까..쓸쓸함이 피어오른다.
그러면 어디 서울 전자센터 같은곳을 들러 보면서 눈요기로 부실해져
있는 부분을 오늘은 채워볼까나...
기사를 보니 마침 광교까지 전철이 개통을 했다고 하니 그리 해서
서초동 국제전자센터를 가보기로 했다.
다음지도에서 광교역까지 가는 방법을 조회해보니 65,63번을 타고
팔달문역에서 하차 반대편에서 400번을 타서 대학로에서 내리면
된다고 한다.
아~~ 그런데 젊었을때도 빠릿빠릿 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나이들고
근무지에서 선잠을 잔탓인지
왜..팔달문을 장안문으로 착각한단 말인가..헉헉 정류장을 찾아 몸고생
을 한후 남양에서 오는 400번 버스를 20여분 기다린후에서야 겨우
광교역에 다다랐다.

 


새 역사 치고는 그리 삐까번쩍하지않다는 첫인상이 들지만 일단
새신을 신었을때의 설레임으로 역이 더해 질수록 많아 지는 사람을
바라다 보다가 문득
아...낮이라 그런가 노인이 너무 많네..라는 생각이 정점을 찍는다.
나 자신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건 좀 아니네..
비 생산적으로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라는 비관
론적 상심을 하는 사이
3호선으로 갈아타고 남부터미널역에 도착했다.
국제전자센터는 꽤나 큰 빌딩이었다.

 


1층에 마트가 있고 2층으로 올라 가보니 전자상가를 방물케 하는데
손님이 없어서 인지 호객행위 비슷한 소리가 나를 달아나게 만든다.

 

 


지인과 과거 직장에 대해 수다를 떨고 헤어져
3~10층까지 컴퓨터, 핸드폰, 게임기를 둘러 보았는데
게임기를 파는 층에 젊은이들이 평일 임에도 꽤 붐볐다.
갈때는 광교역을 거쳐 가는 뉴프론티어 정신으로 2시간여를 소비
했으나 올때는 정상 루트로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빔의 맘 한구석이 좀 채워진것도 같다.

 

만석공원 한 모퉁이에 남았던 너저분한 생활의 흔적이 사라진지 몇달인가

아주머니떼가 무언가 열심히 심더니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가득하다.

두종류 모두 좋아하는 빛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퉁퉁 할매가 시에서 몇십억주고 산 땅에다 겨우 이런걸 심었다는 타박이 귀로부터 눈으로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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