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은 오염원 2부

 

그러던 그해 여름 장마로 인하여 폭우가 쏟아졌고 그로인해 이자수의 
화장실 오물과 닭과 개들의 오물이 모두 청정 계곡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말았다.
맑게 갠 몇일후 전옥리 마을 냇가와 사탁정에서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은
둥둥 떠다니는 똥덩어리들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런 사달이 났는지도 모르는 이자수는 계속해서 지인들을 불러 들여
계곡에서 술판을 벌리고 청정계곡에다 오바이트 설거지를 해대고 산속을 뛰어 
다니다 땀범벅이 된 몸을 벅벅 문질러 대고 있었다.
또다시 전옥리 마을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늦가을 김장을 담그기 위해 냇가로 가져와 배추를 씻기 시작 했는데 
갑자기 희 뿌연 부유물들이 떠내려 오기 시작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항들을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한 마을 이장과 사탁정 사장이
학구산 계곡으로 올라 오염원의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이자수가 산 중턱으로 이사온후부터 이러한 문제가 발생 했음을 알아 차렸다.
사탁정 사장은 자신이 이자수가 머물고 있는 땅을 구매 할테니 다른곳으로 이사갈것을 요구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국가에서 내땅에서 내살고 싶은데로 살지도못하냐고
이자수는 항변을 하며 이사를 못하겠다고 패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에 어쩔수 없다는 생각을 한 이장과 사탁정 사장은 천제시 의회에
오염원 자연인을 청정계곡에서 강제 추방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례를 제정 해줄것을 강력히 제안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에대한 근거 자료로 이자수가 지인들을 불러들여
임산물을 사정없이 채취하고 청정계곡을 무분별하게 오염시키므로 하여 이자수가 이사오기전과 이사온후의
전옥리 마을 주민들의 임산물 채취 농가 소득이 줄어 들었고
사탁정이 오염된 계곡물로 인하여 이용객이 줄어 폐업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내용의 탄원서와 연판장을 제출하였다.
그다음해 이자수는 자연인은 오염원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학구산의 청정계곡에서 강제추방 되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 들인 중앙정부에서도 전국적으로 산,바다등의 
청정 지역을 자연인 생활을 한다는 미명하에 오염시키고 있는 사례를 파악하기 시작 하였다.
2부 종료

 

 

자연인은 오염원 1부

이곳은 이자수가 살던곳으로 부터 고속도로로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할수 있는 심심계곡 오염원이 없는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학구산 자락이다.
학구산은 높이 1000여 미터로 그 계곡으로은 맑은 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이십여가구가 사는 전옥리 마을이 있고 전옥천을
따라 흐르던 물은 천제천을 만나면서 제법 물길이라 할만한 치세를 드러낸다.
천제천이 흐르다 보면 사탁정이 나오고 그곳에는 무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시내의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자수는 회사를 퇴사하기전부터 평소 원하던 자연생활을 하기
위하여 학구산 중턱의 구릉지대에 500여평의 땅을 구매 했다.
농촌생활을 극구 반대하던 아내와 자식들에게 집과 퇴직금을
남겨놓고 딸랑 돈 천만원을 손에 쥐고 이곳으로 들어온 이자수는
아는 건축업자를 통해 폐 철거물들을 골라 지게로 이곳까지 나르는 극강의
노가다 끝에 그럭저럭 지낼만한 거처를 마련할수 있었다.
오두막 앞으로는 텃밭으로는 과하다 싶게 온갖 채소를 가꾸고 있었고 그 끝에는 닭장과 개들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년을 보낸후 이자수는 땅굴을 파고 그속에 갖은 음식 재료들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자수가 학구산을 헤메고 다니면서 이것저것을 채취하여 술을 만들기 위하여 40도의 담금주를 사들이기 시작한것도 이무렵 이었다.
이자수가 그렇게 산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구산에는 전에 없던 길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구산에 그리 많던 더덕과 버섯들의 모습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라진 임산물들은 이자수의 땅굴속에서 40도 알콜에 담가져 있었다.
이자수 본인은 술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왜 그렇게 악착같이
온갖 임산물 술을 담그는지 그자신조차 알수 없었다.
또한 봄만 되면 나물이란 나물은 모두 뜯어다 말리기 시작했다.
그렇게해서 장에 가져다 팔면 그럭저럭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자수는 몰랐지만 전옥리 마을 사람들은 그좋던 학구산이 이제 거의 폐허에 가깝다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1부 종료

 

 

전원생활, 다시 생각해 볼 사항

1. 대형병원, 대형마트가 없다.
젊어서는 괜찮지만 늙어 몸상태가 안좋다면
차를 타고 나간다는건 쉽지만은 않습니다.

2. 단지형 주택에는 사생활이 오픈됩니다.
집장사는 효율적이라고 전원주택을 다닥다닥 짓습니다.
그러면 전원주택의 큰장점인 통창을 이용할수 없습니다.
희망사항인 그림같은 정원을 내다볼수 없고 다른 집을 들여다 보게 되니 커튼을 치고 살수 밖에 없습니다.

3. 벌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치 못하다면 벌래 또한 스트레스 입니다.

4. 뻔뻔한 견주
악착같이 짖어 대는 이웃 개는 스트레스 입니다.
하지만 견주는 우리개는 안물어요
개니까 짖지요 라고 말합니다.

5. 시끄러운 이웃
주말마다 술판을 벌리는 이웃은 참을수 없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집관리를 하는 이웃의 소음 또한 힘들게 합니다.
닭소리 또한 인내를 요합니다.

6. 마당관리
잡초와 잔디 관리는 취미생활이 아니고 현실적인 노동입니다.
감당할수 없게 됩니다.

7. 주택매입
누수, 춥고 덥다는건 악몽입니다.
아파트 처럼 관리소가 없습니다.
집짓는 사람의 무책임으로 기초가 부실하다면 최악일수 밖에 없습니다.

8. 주변에 과수원은 즐거울수 없습니다.
대량 농약 살포는 전원생활을 포기하게 만들수 있습니다.
종료

 

 

나 어릴적 우리집에는

나 어릴적 우리집은 안성 솥공장 옆에서 살고 있었다.
집은 꽤나 넓었고 방이 5개였기 때문에 마루가 있는 곳에는 우리가 살았고 나머지는 세를 놓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말을 하면 누구는 너 어릴때 엄청 잘살았구나 했을 텐데
그건 정말 아니다 잘살았다면 세를 놓지 않고 넓은 집에서 
명절에 좁다구 툴툴대다 등짝을 후드려 맞는 불상사 없이 우리가족만 살았겠지요.
그집에서 살면서 오른쪽 맨끝에는 사진관 집이 세들었고
그집 아저씨가 겨울철이면 공기총을 가지고 사냥을 해서 잡아온 참새고기를 맛있게 먹은 기억은 새롭다.
그후 그집에 이사온 사람들은 아들이 셋 있었는데 거기
아버지가 폐병이 걸렸다고 큰일이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뜻모를 걱정에 빠지곤 했었다.
그리고 형님이 그 아들들의 별명을 대추방망이, 대추씨, 대추벌레라고 지었 부르던것도 선명하다.
그들을 왜 그렇게 불렀을까를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단단해 보이는 애들을 대추방망이 같다고 했으니
그의 동생들은 씨와 벌레가 될수 밖에 없었을듯 싶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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