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번째 시설업 근무지는 수원역에서 가까운 센트럴타운 3단지로 17개동 1,019세대로 제법 규모가 있는 아파트 였으며 첫번째로 진정한 의미의 과장 업무를 시작한곳이었다.
관리비 부과를 위하여 원격검침 자료를 다운로드 가공하여 전산 Xperp에 입력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내가
관리과장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그것을 극복하는데는 전 직장동료로 같은길을 가고 있는 임돈모선배님의 도움이 아주 컸다.
그곳에서 1년여를 동대표회의에 참석하는등 정상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한 실력이 배양될 즈음
센트럴타운 3단지의 업무적 폐단이 지겨워 지기 시작했다.
현회장과 반대파 세력간의 기나긴 법정 다툼은 관리소 업무를 힘들게 했으며 일부 동대표들의 튀는 업무간섭은 도를 넘고 있었다.
특히 행정감사(정안식)라는 자는 전에 아파트 관리과장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어째서 부과내역서 사용량이
소숫점 3자리 이하까지 일치 하지 않냐고 따지기 일수 였고 일반 회사에서도 걸고 넘어 지지 않는 매월 공동구간의 전기사용량 증감분에 대한 세세한 분석을 요구해 왔다.
통상적인 범위에서는 통합적인 사용량의 파악은 가능하나 세부적인것은 계량기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거짓말로 하지 않는 이상 분석 자체가 불가능 하니 형식의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하니 동대표회의 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하는것인지 아니면 관리사무소를 영원한 을로 생각하는 것인지 큰 목소리로 강압적인 태도를 반복적으로 취했다.
(이자는 나중에 안것이지만 청소분야 재입찰시 전업체 부장의 폭로로 뇌물을 받은것이 밝혀져 다른 동대표
들에게 무릎꿇고 살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강압과 아파트에서는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과중한 행정 업무는 나를 힘들게 했고 1년을 채운뒤 다른곳으로 옮기기로 결심을 하였다.
사표를 쓰고 마직막 동대표 회의 참석후 전임회장의 몰락으로 선임된 신임 회장에게 인사차 잘 배우고 간다고 했더니 일만 배우고 가냐고 반문을 하더라..ㅎㅎㅎ

그후 3번째로 간 호매실의 삼익3차 아파트는 700세대로 지역난방 시설이 없어 관리가 훨씬 쉬우리라는
일반화 논리를 깨고 낡은 각종 설비로 잘못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농후 했다.
발전기는 연료계통에 문제가 있어 연료에 물이 섞이고 있어 언제 멈출지 모르고 유압변압기는 노후화로 여름철 과부하시 폭발의 위험성이 있었으며 지하주차장은 폭우시 배수 시설이 낡아 전기실등 주요 시설이 침수될 위험성이 상존해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배수로에 별도의 수중 펌프를 임시로 설치해 작동시켰으나 그기동이 기전실 요원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감전의 위험이 있었다.
또한 인터폰 시설이 낡아 전체 세대를 대상으로 교체 해야 했으며 아파트 구역내에 있는 한전 고압 변전시설의 건물외 이전이 필요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소방 주펌프는 작동 불능 상태로 이를 방치하고 있는것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수 있었다.
그러한 문제점들 중에서 가장 큰것은 동대표회의에서 수리를 위한 큰비용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근근히 관리소직원들의 임시방편으로 버티고 있다는것이었다.
그러다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면 모든 책임을 관리소가 떠안게 될것이었다.

시설업 근무지가 내가 있을곳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고질이 되기 전에 가장 빠르게 전직하는게 최고의 선택
이라는 이분야 명언에 따라 2주일 만에 다른 후보자에게 인수인계하고 4번째 관리소로 옮겨 간곳이 
광교파크자이더테라스였다.
여소장이 있는곳으로 내인상이 좋다고 토요일 전임자로 부터 인수인계 받고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그곳은 기존의 아파트가 아닌 신개념의 주거 공간으로 서울에서 이사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대수는 268세대로 층이 4층 이하이고 동이 많은 광교산 자락의 쾌적한 삶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입주자들의 시각에서 였고 관리소 직원들에게는 좋은 정보는 절대 아니었다.
아파트와 달리 지하 시설물 공간은 동마다 위치가 다르고 드넓었다.
처음 입사하여 지하 저류조에 들어간날 고장난 방류펌프를 수리하고 나오다 미로같은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핸드폰을 보니 통화 불가 지역이었다. 
어둡고 퀘퀘하고 기분이 불쾌하고 무서운 지하공간에서 한시간여를 헤메다 간신히 탈출 할수 있었다.
그후 모든 공간을 들어갈때는 퇴로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노끈을 끌고 들어갔다.
아마도 전임자는 분명히 이런 공간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을듯 싶다. 
그러던중 봄철이 오자 테라스하우스에 걸맞게 광활한 조경시설에 잡초가 무성해 졌다.
하지만 광교파크자이더테라스 관리소에서 자체적으로 잡초를 제거하기에는 작업자수가 너무 부족했다.
그곳 관리사무소 직원은 소장, 과장, 경리, 교대주임 2명, 청소아주머니 3명, 외곽청소원 1명, 보안 4명등
13명 정도 였다.
여기서 13명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할것이다.
하지만 보안반장이 법률 운운하며 보안원을 다른 업무에 투입하면 불법이라고 강변하자 보안이 예초
작업에서 제외되었고 청소아주머니는 남자가 아니라 열외, 외곽청소원은 자기 고유업무하기도 벅차고
소장은 여자라 제외, 경리는 민원전화로 제외한후 교대비번자 마저 빼고 나면 잡초제거 및 예초 작업에 투입 될수 있는 인원은 과장(나)과 기전주임 딱 2명 이었다.
그러니 과장은 한달 가까이를 잡초제거만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것이다. (교대기전주임은 2일에 1번만
작업을 한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여소장(임현자)에게 용병 할머니들을 투입하여 진행 하지 않으면 잡초제거는 거의 불가능함을 설득하여 2일에 걸쳐 외부인원을 투입하기로 하였다.
버스로 투입된 20명정도의 인원이 하루를 작업하자 50%정도의 잡초가 제거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 입주자 대표 회장에게 혼날것이 걱정이 된 여소장이
용병투입을 하루로 끝내 버린 것이다.
입주민을 위한 추석전까지 잡초 제거 작업은 어찌할것인가?
결국 예초기를 짊어메고 과장(나)과 기전실 직원이 도맡아 할수 밖에 없다 그것도 추석까지 2주를 땡볕에...
게다가 문제가 편의점 2+1식으로 발생 했다.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이 과장(나)한테 관리동에 있는 소나무 조경수에 본보기로 설치한 투광기를 본 입주민의 반응이 열화와 같으니 투광등을 추석전까지 전동에 설치하라는 특명이 떨어 진것이다. 
예초기를 돌리며 여소장에게 회장님의 특명대로 투광등을 설치 하려면 잡초제거 작업을 할수 없으니
그사정을 회장에게 말해달라고 하자 여소장의 표정이 바뀌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여자하고 싸우기도 뭐하고 해서 사표를 쓰겠다고 하자 그때부터 미안한지 낫한자루 들고 예초작업에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생 고생끝에 예초작업을 끝내고 ...투광등 설치도 최소한으로 마친후 사표를 내고 돈으로 주지 않는다는
연차를 사용하기로 하고 같이 있으면 불상사가 날것 같아 가능하면 전기실등에 점검을 많이 나가자 대놓고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는다고 경리 핑계를 대며 생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럴거면 내일이라도 나갈테니 연차를 돈으로 달라고 내가 말하자 그렇게는 할수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며
업무방해로 경찰을 부르겠단다.
나는 노동법에 해박한 보안 반장과 상의를 한후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내가 고용노동부를 찾아가겠다고 하자 여소장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연차휴가외에 추가로 내일부터 그냥 푹쉬다 나가란다.
관리업, 시설업에 종사하는 직원중에는 여자소장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는 여자소장들이 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을 한다.
나는 이 한가지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 하는데 동의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리업 시설업에는 정말
특이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다.


구한말 신사유람단을 일본에 파견 했듯이 일을 잘하려면 보는게 많아야 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하며 좋은 감리 활동을 하려면 각종 전시회등에 참석하여 신기술을 접해야 한다.
18일 강남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시작이 10시부터로 초반 혼잡을 고려해 30분 뒤에 입장 하는걸로 판단하고 전철로 9시에 화서역에서 출발 1호선으로  금정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 타고 최종적으로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한 후 삼성역에 도착 하면 거의 시간이 맞을 듯 하다.
실제에 있어서는 예상보다 좀 빠르게 도착하여 코엑스 3층으로 가니 복도에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 있다.
입구가 막혀있어 출구로 가니 진행요원이 업체 사람들만 입장 가능하고 visitor는 개장 회의가 끝난후 입구에서 가능 하다고 했다.
하는수 없이 입구쪽으로 가니 간단한 행사 무대가 마련 돼어 있고 노련해 보이는 여자 사회자가 귀빈을 한분한분 소개하고 몇분의 축하 연설을 들었다.


그리고 입장이 가능한가 하고 우르르 들어가는 무리를 따르니 입구로는 여전히 안된다고 한다.
다시 출구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아까의 진행요원의 말과는 다르게 입장이 가능하다.
이런거 보면 행사 진행요원들도 어떻게 할지 판단이 서지 않고 횡설수설 하는 느낌이 있어 시간을 낭비하는 측면에선 불편했다.
같이 간 젊은 직원은 벌써 입장하여 많은걸 둘러 봤다고 하니...진행요원에 따라 입장이 빠르거나 늦어지는건 좀 아닌것 같다.
행사장을 들어가니 많은 부스가 보인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 바코드 찍고 볼펜 한자루 주는 한국전력 부스에는 사람이 나라비 줄을 서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때는 오히려 판단에 장애가 발생한다고 나 할까..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일에 도움이 될것같은 접지 시설에서 카달로그를 챙기고 명함을 주고 추가 자료를 요청 했다. 또한 자동 케이블 포설 장비를 둘러보고 혼잡한 코엑스를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12시로 오늘 일정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분당으로가 옛직장 동료들을 잠간이라도 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신분당선을 타고 정자역에 내렸다.
전직장 동료에게 전화하여 위치를 물어보니 분당빌딩라고 했다. 
위치를 몰라 네비를 켜 방향을 잡고 걷다 보니 이길이 아닌가 보다. 너무 멀다.
예전 생각을 해보면 좀걷긴해도 이렇게 많이는 아니였다 싶다.
다시 전화해 이매역에서 내리면 더 가까운데 왜 정자역이냐고 하니..본인도 이곳을 잘 모른다고 분당빌딩이 아니라 분당 본사빌딩 이란다.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걷기는 힘들어 택시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에서 맥없이 앉아있다 250번을 보니 정자역을 거친다.
헷갈린땐 원점에서 다시 한다는 생각으로 버스를 탔다.


천신만고 끝에 커피숍에서 전직장 동료 2명을 반갑게 만난후 다시 돌아 오는 전철은 피곤하기만 하다. 다행히 영통역 전에 자리가 나 앉아 올수 있었다.
아무튼 수원 밑으로만 다니던 사람이 밀려 다니는 서울을 어쩌다 가면 예전같지 않고 힘들고 피곤하다.    나자신은 아닐거라고 항상 여기고 있지만 이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인건가?.

공포 스릴러 영화중에 "데스터네이션"이 있습니다.
꿈에서 본 사고로 고등학교 친구들 7명이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한명 한명 죽어간다는
영화입니다. 결국은 죽을 운명인 사람은 죽는다 뭐 이런건데 영화에서는 극적 재미를
가미하기 위해 살아 남은 사람도 있지만 실제에 있었서 죽음을 피한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5월 6일 일그러진 타임 슬립으로 초저녁밤의 꿈에 지각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렇게 
해프닝으로 넘어 가는듯 했더란다.
그런데 5월 10일 같은 일이 진실로 출근시간에 벌어 지고 말았더란다.
5시 40분이라고 느긋하게 밥을 먹었지만 실제는 6시 40분으로 먹던 밥을 토해 낼 정도로 
난리를 했더란다. 하지만 화서역으로 날아 간다 한들 6시 25분 열차를 탈수는 없더란다.
전철 시간 어플을 조회하니 6시 52분 서동탄행을 타고 수원역에 내려서 7시 02분 신창
행 급행 열차를 타면 8시 근저리에 봉명에 도착할수 있더란다.
6시 47분 화서역까지 숨이 목까지 차오를때까지 뛰어 플랫폼에 다다를때 전철이 들어서더라.
수원역에서 열차를 갈았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최종 목적지가 천안이고 세류역에서도
정차를 하는걸 보니 급행이 아니더란다.
다시 어플을 열고 상세히 보니 수원에서 7시 2분에 천안행이 있고 7시 12분에 신창해 급행
이 있었더란다.
지금까지의 두번의 에러가 나를 더욱 멍하게 만들고 있더란다.
오산역에서 하차후 신창해 급행 열차로 갈아 탔더란다.
많은 사람으로 서서가다 서정리 역에서 앉게 돼었더란다.
봉명역에 8시 5분에 도착 사무실에 12분 정도에 들어 섰더란다.

타임슬립의 오류는 지각에 한가지 더해 나를 오전내내 맨붕에 빠지게 한다.
현장에 콘크리트 타설전에 의문점이 있어 도면을 들고 살펴 보던중 발주처의 차부장이
나타나 지금 콘크리트 타설을 해야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하고 물었다.
나는 아니다 전기는 어제 다 확인 했고 통신쪽에 궁금한것이 있어 시공사 차장에게 
물어 보고 잠깐 확인 한거다.라고 했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타설전 건축부분에 지연이 있어 민감한데 타감리가 혼자 다니면 무언가 
잘못 된건가 하고 의심할 수 있으니 앞으로는 시공사등을 불러 물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콘크리트 타설전에 전기가 왜 혼란스럽게 하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전기가 몇명이냐 ..이건 전기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등 헷갈리는
말을 했다.
어느정도 맞는 말일수 도 있지만 감리가 콘크리트 타설전에 미심적은 부분을 한번더
보는것을 안된다고 하는 법조문을 본적은 없다.
공사 일정이 지연 되더라도 의심스러운건 어느순간이고 확인 하는게 맞는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본다.



위 문장은 지인들과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찾은 수리산 자락의 "수리산두꺼비"에서 보았다.
이곳의 주메뉴가 고추장숯불구이이고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게 콩과 관련 있는 음식들이다.
간단하게 속편한 콩탕을 주문하여 맛갈난 깻잎과 양념을 제거한 김치로 간을 맞춰 먹다 눈에
들어온 글귀가 나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다.
액자에 들어 있는 "나의 내면이 가난하다면 수리산의 단점만을 찾는다."는 말이 살아서 나의
가슴속을 아프게 파고 든다.
나는 가능하면 모든일과 사람들속에서 긍정적인 면만 찾고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나의 행동양식의 모든패턴은 부지불식간에 무엇이든 안되는 방향과
불길한 상상 부터 해대기 시작 한다.
오죽하면 집사람이 나를 핸폰에 투돌이라 저장해 놨을까
"너의 말이 너의 가능성이다"라는 말귀 같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가능한 일이고 반드시 될수
있다는 낙천적 성정이고 싶다.
누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안될거라는 말보다는 모든 우주의 기운이 너의 앞길을 뒤받침
하고 있으니 반드시 될수 있다는 빛나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느끼해진 콩탕을 깻잎으로 가라 앉히듯 튀들린 심사를 바로 잡으며 다시한번 정성을 들여
낙천적 성정을 깃들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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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다닌 통신회사를 여러가지 사유로 퇴직한후 제2의 인생길에 도움이 될 전기기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후 먼저직장 선배 네비게이터 안내로 관리업, 시설업에 들어서게 됐다.
처음엔 경력이 없어 취업이 금방 되려나 했는데 이력서를 넣자 집에서 가까운 천천동의
100(수정:재확인 202세대)세대 아파트 관리소에서 연락이 왔다.
대개의 경우  전기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관리사무소 과장, 또는 오피스텔, 빌딩등의 소장으로                          일근직 업무를 수행 하는데 나는 완전 초보라 전기와 소방을 선임은 했지만 24시간 교대 근무를 했다.
물론 세대수가 적어 근무 인원이 소장, 경리, 교대근무주임 2명, 경비 2, 미화 2 이 다였다.
정화조까지 있어 지원자들이 바로 사직하는등 근무 여건은 열악 했지만 일년이라도 경력이 있어야 
나은 조건의 근무지로 갈수 있다는 희망으로 근무에 임했다.
지금 보면 관리업, 시설업이 보통의 직장보다 문호가 넓다는것은 그만큼 인력 수준이 떨어진다는걸 의미
함을 그곳에서 10여개월을 근무하면서 체득 했다.
나를 첨 채용한 소장은 이병목으로 근무지 바로옆 아파트에  살면서 그곳 입주자 대표회의 임원이었다.
근무지에서는 '을' 이고 자택에서는 '갑' 입장이었는데  근무지에선 대표들을 
엄청 디스 하고 있었지만 바로 옆 아파트에서는 갑질을 많이 했다.
그러니 야누스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할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일처리가 대표들 마음에 들지 않아
퇴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밤 12시에 술을 먹다가 근무하는 30대의 젊은 직원을 찾아가 LED등 교체작업을 하는 
자기를 신속히 보좌하지 않고 여자친구와 통화 했다는 이유로 싹아지가 없다며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장과 젊은이가 서로 경찰서에 고소 고발을 하면서 나와 경리에게 탄원서를 써달라고 하여 
난처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십대의 이병목 소장이 나간후 좀더 젊은 사십대의 장시녕이라는 소장이 부임을 했다.
이 인간이 처음에는 깎듯하게 나를 대해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 했지만 어딘가 부담스러움이
배어 있다고 느끼기 시작할때 자기 아는 사람에게 CCTV 공사를 맡긴후  화질이 떨어진다는 말을한
경비원을 압박하는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경비원분이 세대 에어콘 실외기의 까치집을 제거하고 받은 건강 식품을 소장한테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70넘어 40대의 소장에게 소장님 제가 잘못 했다고 비는 갑질을 당하였다.
또다른 사건은 겨울철 많은 눈으로 주차장을 정리 해야 하는데 인원이 없는 곳이니 소장이 직접
눈을 치워야 했다.
힘들게 눈을 치우다 관리사무소에 들어오니 지역난방 구동기 교체업체에서 나온 기사가 경리주임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맛이간 장시녕이 기사에게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내근인 경리주임은 공포감으로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러 밖으로 나올수 밖에 없었다. (수정 : 장시녕이 직접 나가 눈을 치우라고 지시함.)

202세대 그곳은 오래된 곳으로 모든 것이 노후화 되어 있었다. 
벤치가 낡아 교체작업을 하였고 관리소 옆의 운동기구 몇가지도 나무가 썩어 안전사고 발생우려로
사용을 할수 없었다.
어느 목요일 소장의 지시로 낡은 운동기구를 치우기 위해 삽질을 하였으나 날이 어두워져 일시 중단 하였다.
다음 월요일 점심식사후 기구제거 작업을 이어서 하고 있으니 경비아저씨가 와서 같이 도와 주었다.
한참 땅을 파내고 있는데 소장이 나와 낡은 운동기구 제거 작업은 입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는것으로
중단하라고 했는데 왜 하느냐고 큰소리를 하였다.
자기가 문자 메세지로 지시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지금처럼 카톡 단체방이 있던때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인식을 못한것일 수 있었다.
그말을 들은 나는 파내던 흙을 다시 덮기 시작 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내옆에서 장시녕이 왜 하지 말라는걸 했냐고 반복해서 나에게 화난 소리를 했다.
그건 내가 자기를 속된말로 엿먹이기 위해서 이작업을 한거냐는 말투 였다.
한시간여를 타박의 말을 반복해서 했다. 그렇게 중요한거면 아침에 직접 지시를 했으면 이런 오류는 없지 않겠냐고 하자 나한테 몸을 들이대면서 욕지거리와 이죽거림, 한대 칠것같은 행동으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와 왜 아니라는데 자꾸 그러냐고 밀었더니..바로 내팔을 꺽었다.
(그는 평상시 자기가 수원의 다른 쪽에서 일할때 직원들을 엄청 힘들게 했다고 말해 왔고 이제는 안그러고
싶다고 했고 격투기를 배워서 누구든 소장의 가오를 깍는 사람은 가만 안둔다는 말을 반복 했었다.)
내가 앞에 CCTV가 있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자 쌍방과실이란다. 내가 자기를 민것도 일종의 구타란다.
그런일이 있은 얼마후 사무실에서 보자고 해서 올라갔더니 갖은 욕설과 당장 나가라는 말을 했다.
나는 나갈수 없다고 하자 내목을 누르면서 다시 욕을 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눌러 녹음을 시도 했으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녹음이되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후 장시녕 썩을놈이 나에게 자비를 베풀듯이 일년 채우고 나가라고 했지만 나는 과장자리를 찾아
다른곳으로 이직을 하였다. (수정:집사람이 법을 잘아는 큰처남에게 말해 따져 물으니 겁이난   장시녕의      꼼수 였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시녕이 언제부터인가 자기 친구라고 하면서 전기안전관리 대행업을 하는 인간을 데리고 다녔다. 전기실에 들어와 변압기 살펴보기를 수차례 하는걸 보았다.
장시녕이 입주자 대표회의에 잘보여 오래도록 근무하기 위해 수전시설 용량을 1000kw이하로 낮춘후
전기안전관리자를 해임하고 자기 친구의 회사를 전기안전관리 대행을 시키기 위한 꿩먹고 알먹고의 
사전 포석이었다.
그리고 걸림돌이 되는 나를 내보내기 위해 명확한 지시없이 나에게 시비를 건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면 될것을 왜이렇게 사악하고 거칠고 수준낮고 비열하게 일을 하는것일까.
관리업, 시설업 이분야가 보수가 적고 일이 열악하여 수준이하의 인간들이 많아 앞으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할것으로 보이니 이분야의 일을 하지 않는것이 바람직 해보인다.

영업파트에서 천신만고 끝에 기술부서로 되돌아 온 후 시험실을 거쳐 처음 해보는 업무를 맡게 됐다.
그업무는 일반 지점부분에서는 수행 되지 않던 교환기 집중 원격 처리 시스템으로 본사, 본부 방침이
변경됨에 따라 시스템이 평택으로 분산 배치 되었다. 새로운 일과 함께 기존의 기량자 2명외에 내가 합류 하면서 교환기 명령어등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 3개월 후 휴일 근무를 한사람씩 나눠 업무를 할수 있었다.
그후 기량자 2분은 생활권이 수원인것을 어쩔수 없이 평택권으로 온것으로 1년여 후 모두 
되돌아 가고 내가 다른분들을 가르키며 업무를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온 분은 강과장님으로 원래 선로 원격시험에 탁월한 실력이 있었으나 그분야의 사양화로
어쩔수 없이 오신분으로 3개월 동안 열심히 하신후 혼자해야 하는 토요일 근무를 처리 하셨다.

문제는 그후에 온 사람으로 부터 발생했다.
그는 꽤가 많아서 인지 정말 못하는것인지 몰라도 일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등 문제점이 많은
트러블 메이커로서 각분야 보스들이 서로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그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부서의 과장이 고육남이었는데 어느날 나를 불러 김경욱을 발령낼려고
하는데 어떠냐고 이야기 했다.
나는 속으로 뺀질이와 같이 일하는것이 싫었지만 과장이 이렇게 말하는것 보면 여러 사정상 여타 올사람이
없고 현재로선 자원이 김경욱 밖에 없구나 생각 하면서 일단 T/O를 채워놔야 나중에 다른 사람
으로 교체할 수있지 않게나 하는 생각에 어렵지만 최대한 데리고 일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를 데리고 3개월 동안은 나와, 강과장님이 휴일 근무를 하면서 버텼다.
그러는 동안 김경욱이를 보니 도대체 물어보면서 배우려는 자세도 없고 교환기가 에러걸려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물론 해당 지점등에서는 교환기 작업이 신속하게 안된다는 민원이 계속 발생했고 그 해결은 나와 
강과장님의 몫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3개월이면 혼자 휴일근무를 들어갔으니 김경욱이 보고 휴일 업무를 하라고 하면
좀더 책임감이 생겨 열심히 배우려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몇번에 걸쳐 혼자 휴일근무를 시켜보니 역시나 에러처리를 못하고 휴일에 쉬고 있는 나한테 민원이
쏟아 졌다. 나는 주 사무실인 평택이 아닌 집가까운 안성 시험실로 비상출근해 에러를 모두 처리해가면서 3인이 나누어 휴일근무 하는것을 몇주 더 계속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은 힘들지만 장기적으론 나와 강과장님의 과부하를  덜수 있는 옳은 방향이고 김경욱에게도 일을 빨리 배울수 있는 자극제가 될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던 어느날 과장 고육남이 날 찾아 다짜고짜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주 요지는 일도 못하는 김경욱이를 왜 휴일 근무를 시키냐는 거였다.
나는 이일은 누구나 3개월 같이 배운후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혼자 휴일 근무를 해온것이 관행이란것을
말했다.
고육남은 니가 김경욱이 어려울때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일을 어떻게 하라고 하냐고 화를 내면서 내가
몇년전에 안성에서 김재운과장과 있던 문제를 상기시키면서 비열하게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휴일근무시 문제가 발생하면 안성 시험실로 출근하여 원격으로 처리 했다고 하자 그거에 대해서는 더 말을 못하면서 첨부터 김경욱를 못받는다고 하지 지금와서 이런문제를 발생시키면 어떻게 하냐고 이야기의 요점을 변경했다.
나이도 많은 놈(김경욱)이 휴일근무하나 못하고 짜증나서 과장 고육남한테 가서
내가 일을 알지도 못하는데 실장이 강제로 휴일근무를 시키고 있다고 고자질을 하니..그걸 들은 고육남
이놈은 전후사정을 파악도 안해보고 무조건 실장인 나한테 와서 호통을 치는 이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 이 돌아이 두 잡놈이 나를 미치게 하는구나 하며 올라오는 화통을 가라 앉히고
고육남에게 현상황에 그럴수 밖에 없음을 최대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 잡놈은 그걸 이해 하려 들지 않고 내가 잘못 처리해서 일이 이렇게 됐다고 내탓만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후에도 해당업무가 수원으로 합쳐지기 전까지 김경욱이하고 계속 일을 하긴 했는데..
김경욱이에 대해 휴일근무을 빼줬는지 아니면 그냥 시켰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것은 참으로 희한하다.
내가 고육남이의 일방적인 억지말을 받아 들이려다 보니 뇌회로가 잠시 쉰것은 아닐까?

경기 수원 남쪽으로 30여분 거리에 발안이라는 곳이 있다.
그지명이 낯설지 않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군데 갔다와서 내 주특기(선반)를 살려 아버지가 친척 형님벌 되는 분께 부탁하여 들어가 다니던
부평의 코리아 스파이서라는 회사가 있었다.
자동차 부품관련 회사로 꽤나 괜찮은 중소기업으로 기억된다. 
그 공장을 2년여 다니다 절삭유의 기름독으로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 그만두고 1년여의 독한 공부 끝에 
들어간 통신회사에서 첫 발령을 받은곳이 바로 발안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로 우리 부모님에게는 최고의 직장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니 그 기쁨은 
더할나위 없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다 그렇듯 즐거움은 잠시뿐 그 속에서 지지고 볶고의 인생살이를 하다보면 답답해
질때가 있다.
그 잘난 회사를 3~4년 다니다 보니 내부 배치에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 했다. 
통신으로 들어가 사람을 전기실에 배치 하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이때 마침 4급과장(원래 과장은 3급이다.)으로 온 사람이 곽노흥 이라는 인간이다.
언제나처럼 낙천적으로 몇년만 더 있으면 자기는 3급 달고 2급 달고 국장 그이상을 할수 있다고
떠벌리기 일수인 사람으로 생기긴 미련곰투가리 같았으나 실상은 천하의 모사꾼이었다.
와 이사람 능력이 엄청 좋은가..우리같은 사람은 답이 안보이는데 어찌 저렇게 자신만만 할수 있을까?
그자가 온지 얼마 안돼 나는 그자의 감언이설에 따라 전기실에서 사무실로 발령을 받아 가게 되었다.
자 이제 나도한계급 승차를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뒤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던 어느날 곽노흥이 자기 차 타이어를 바꿔야 한다며 나를 태우고 나갔다.
그때만 해도 너무나도 순진해서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타이어가 헌것도 아닌것을 광폭으로 바꾸는것을 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는거지 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의문을 품었을 뿐이었다.
그 사무실에는 나와 동기지만 몇달 늦게 발령 받은 천지석이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곽노흥이 나에게 사무실가서 열심히 일을 하면 보장해줄것 같이 말하던 
승차를 가지고 나와 천지석 사이를 오가며 경쟁을 시켜 무언가 잇속을 챙기려 했던것이다.
아마 내가 사회생활의 속물 이었으면 그 타이어값을 냈을 거고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천지석을 앞질러 승진을 했을것이다.
그런던중 곽노흥이 다른곳으로 발령이 나고서도 나와 천지석의 승진문제를 총무과장과 연락 하면서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는걸 알수 밖에 없었다. 
몇일밤을 고민하다 국장을 찾아가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제가 먼저 왔으니 승진을 먼저하는게 순리가 아니겠냐는 말을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국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후에도 지속적으로 곽노흥은 농간을 부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총무과장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이런자에게 돈을 줄것인가 아니면 승진을 포기할것인가에 대해 고뇌를 하다 스트레스가 쌓여
분노를 누를길이 없을 즈음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는 이런 천하에 모리배 자식 (부하 직원의 승진을 빌미로 돈을 받아 제 사리사욕을 채우고 위사람들에게 상납하여 자신의 부귀영화에 최선을 다하는 자)을 용서할수 없다는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당신 내가 승진 안해도 상관없지만 자꾸 전화해서 농간을 부리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신같이 높은 자리까지 올라기실분이 소탐대실 하시지 말고 나같이 말귀를 못알아 먹는 사람도 있으니
이번은 군말말고 빠져 계시라고 했다."
그런 몇일이 지난다음 내말에 당황 했는지 곽노흥이 대리님 대리님 하면서 전화를 했왔다.
인생이 즐겁고 탄탄대로인분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순 없었던 모양이다.
몇달뒤 나는 승차를 할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왜그리 참을수 없었을까?

내가 25년을 다닌 직장에서라면 할말이 정말 많다.
그렇치만 전부를 한꺼번에 말할 수는 없고 단칼로 어느 한부분을 짤라 그시점에 떠오르는 울화통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그 직장은 원래 기술직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승진한 몇일뒤 뜸금없이 영업 부서로 발령이 났다.
본부라는 곳에 전화를 해 내가 왜 기술자인데 영업부서로 발령이 났는가를 물어 보니 거기서도 잘 모르고
이번에 대대적인 승진과 조직 개편으로 많은 인사 발령이 있는 것으로 안다는 정도의 말뿐이었다.
평택 영업 부서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2년여를 했다.
그당시 평택 영업 부서는 몇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평택, 송탄, 안성, 안중 등 지역을 기반으로 팀을
구분했다) 문춘식 그 인간은 1팀의 팀장으로 있었다. 
1팀은 수석팀으로 각 개인별 판매량을 할당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고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직원들에게 많은 할당 물량을 강제 떠맡게 하였다.
물론 기술부서에 있을때도 말도 안되는 대량의 판매를 개인들에게 할당 하기 일수 였고 그 근거에 의거
고과와 승진이 좌지 우지 됐었다.
하지만 그것과 영업부서에서의 판매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는것이다.
영업부서가 체질에 맞지 않으니 다시 기술 부서로 옮겨 줄것을 상급자에게 수도 없이 요청 해서 결국
자리를 옮기 게 됐다. 
다시 돌아온 기술부서에서 일을 했다. 
해당일이 지역단위에서 본부 단위로 통합 되면서 평택에서 수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자리를 옮기는 날 총 4명중 나만 일을 마무리 하느라 남아있었고 3명은 일찍 수원으로 떠났다.
현장 개통 지원을 거의 마치고 퇴근 무렵즘 문춘식 저 개같은 인간이 갑자기 욕지거리를 하면서
파쇄기를 이사 가면서 가져갔다고 나한테 한바탕 큰소리를 내었다.
나는 가능한 정중하게 부장님 그건 제가 관리하는게 아니라 다른 파트에서 가져 간거니 저는 알수
없다고 여러번 말을 했는데도 욕과 화풀이를 쏟아 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미친놈의 새끼야 내가 한게 아니라는데 왜 나한테 지랄이냐고 하고 싶었지만
직장이라는 위계 질서가 있으니 최대한 꾸욱 눌러 참고 버텼다.
그놈은 지가 팀장을 하다가 부장으로 승진을 하여 마케팅 부서 전체를 총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파쇄기가 없어 졌다고 하니 직원들 앞에서 가오 세우려고 나를 타케팅 삼아 욕받이를 한것이리라.
추후 말을들어보니 문춘식이가 파쇄기를 가져간 부서의 장에게 전화로 지랄 염병을 하여 돌려
받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땅딸하고 꼼슬머리 곰보끼의 얼굴을 한번 뭉개주지 못한것이 울화통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무척이닌 슬프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설상가상 : 한방에 날려 보낼방법 없나요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다. 눈위에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려니 안좋음이
겹친다는 정도는 삼척동자도 금방 알아차릴수 있겠다.
지난달부터 집사람이 유치원교사 자격증과 학교 졸업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1달동안 다녔던 유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졸업과 동시에 자격증을 받으면 정식으로 취업을 할수도 있을거라
는 희망을 나타내기를 아내는 감추지 않았다.
나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만학으로 공부한것의 결실이 좋게 나타나는것
을 축하해주었다.
물론 몸이 약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지만 5년동안 힘들게 준비해온
일에 대한 집념을 어찌 축하 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에만 있는것에 대한 소외감으로 무력감 증세가
있는듯 해보였으니 잠시 일을 해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것이다.
호사다마라 좋은일에는 나쁜일이 끼기 마련인 것일까?
시작은 빈이 교복구매에서 부터 시작이 된듯하다.
올해는 빈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교복을 마련해야 하므로 중학교 배정일로부터 5일안에는 10%의 할인을
받을수 있다고 해서 교복 매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10%의 할인 서비스는 마감이 돼어 있었다.
5일이라는 계산법에 아내의 착오가 있었다.
할수 없이 원래의 가격을 다주고 무척이나 불친절한 구매를 했다.
아내는 무척이나 허탈해 했다.
그리고 어제 하루종일 회사일로 정신없이 보낸후 집에 오니 아내가
투덜거렸다. 교통사고가 나서 전화를 했더니 왜 통화가 안돼냐는거
였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아내는 조심하느라 운전을 했지만 정수기
회사 코디로 보이는 여자가 그대로 옆을 받아 버렸다는 거였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뺀돌이 같아 보였다는 코디가 잘잘못
응대에 묵묵부답이었다고 아내의 표정에서 분함을 읽을수가 있다.
비보호 사거리니 각자 보험사를 불러 처리 하였다.
아파트에는 정비소에서 보내준 렌트용 소나타가 주차되어 있었다.
오늘...
빈이 졸업식이 있었다.
휴가를 낸후 온가족이 축하를 해주기 위해 빕스에 들러 맛있게 점심
을 먹고 기분이 들떠 있었다.
딸들을 먼저 집에 올려 보낸후 인이 잃어버린 인이 피부약을 다시
사기 위해 중심상가 병원으로 갔다.
상가 뒷길에 주차를 했다. 아내가 이길은 이면도로라 주차단속 안한
다고 상가 아저씨가 말했다고 했다.
4층 병원에 올라 갔으나 점심시간 이다.
2시까지는 2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사이 아이들 영어학원 재등록과 빈이 중학교 배치용 시험 문제지를
구매했다.
약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피부과 약이 두가지 인데 어느게 얼굴용
이고 어느게 손목에 바르는 건지 구분을 할수 없었다.
집사람이 다시 병원으로 올라간 사이 갑자기 기분이 묘해 주차돼어
있는 차로 갔다.
어이구 두야...주차단속 안하다는 이면도로인데...
연필로 개발새발 쓴 주차 딱지가 앞면 유리창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
화가 났다.
울화통을 해소하기 위해 이리저리 주차단속 요원을 찾아 봤으나 보이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이 없어 제때에 일을 처리하지 못해 이런 일
들이 발생한게 아니냐는 속절없는 판단에
집사람에게 전화를해 화풀이를 했다.
오히려 손해만 나니 아르바이트 하지말라고 억지소리를 했다.
아내가 한숨을 쉬었다.
얼굴색이 좋지 않는 아내를 보니 갑자기 후회가 밀려 온다.
주차벌금이 뭐길래...우리 가족 분위기가 안좋아야 하는가...
몇만원에 죽고 사는것도 아닌데...
아내를 다독이며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맥주라도 한잔하면서 아내와 우리에게 다가온 설상가상
들을 한방에 날려 보낼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좀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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