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파트에서 천신만고 끝에 기술부서로 되돌아 온 후 시험실을 거쳐 처음 해보는 업무를 맡게 됐다.
그업무는 일반 지점부분에서는 수행 되지 않던 교환기 집중 원격 처리 시스템으로 본사, 본부 방침이
변경됨에 따라 시스템이 평택으로 분산 배치 되었다. 새로운 일과 함께 기존의 기량자 2명외에 내가 합류 하면서 교환기 명령어등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 3개월 후 휴일 근무를 한사람씩 나눠 업무를 할수 있었다.
그후 기량자 2분은 생활권이 수원인것을 어쩔수 없이 평택권으로 온것으로 1년여 후 모두 
되돌아 가고 내가 다른분들을 가르키며 업무를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온 분은 강과장님으로 원래 선로 원격시험에 탁월한 실력이 있었으나 그분야의 사양화로
어쩔수 없이 오신분으로 3개월 동안 열심히 하신후 혼자해야 하는 토요일 근무를 처리 하셨다.

문제는 그후에 온 사람으로 부터 발생했다.
그는 꽤가 많아서 인지 정말 못하는것인지 몰라도 일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등 문제점이 많은
트러블 메이커로서 각분야 보스들이 서로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그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부서의 과장이 고육남이었는데 어느날 나를 불러 김경욱을 발령낼려고
하는데 어떠냐고 이야기 했다.
나는 속으로 뺀질이와 같이 일하는것이 싫었지만 과장이 이렇게 말하는것 보면 여러 사정상 여타 올사람이
없고 현재로선 자원이 김경욱 밖에 없구나 생각 하면서 일단 T/O를 채워놔야 나중에 다른 사람
으로 교체할 수있지 않게나 하는 생각에 어렵지만 최대한 데리고 일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를 데리고 3개월 동안은 나와, 강과장님이 휴일 근무를 하면서 버텼다.
그러는 동안 김경욱이를 보니 도대체 물어보면서 배우려는 자세도 없고 교환기가 에러걸려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물론 해당 지점등에서는 교환기 작업이 신속하게 안된다는 민원이 계속 발생했고 그 해결은 나와 
강과장님의 몫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3개월이면 혼자 휴일근무를 들어갔으니 김경욱이 보고 휴일 업무를 하라고 하면
좀더 책임감이 생겨 열심히 배우려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몇번에 걸쳐 혼자 휴일근무를 시켜보니 역시나 에러처리를 못하고 휴일에 쉬고 있는 나한테 민원이
쏟아 졌다. 나는 주 사무실인 평택이 아닌 집가까운 안성 시험실로 비상출근해 에러를 모두 처리해가면서 3인이 나누어 휴일근무 하는것을 몇주 더 계속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은 힘들지만 장기적으론 나와 강과장님의 과부하를  덜수 있는 옳은 방향이고 김경욱에게도 일을 빨리 배울수 있는 자극제가 될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던 어느날 과장 고육남이 날 찾아 다짜고짜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주 요지는 일도 못하는 김경욱이를 왜 휴일 근무를 시키냐는 거였다.
나는 이일은 누구나 3개월 같이 배운후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혼자 휴일 근무를 해온것이 관행이란것을
말했다.
고육남은 니가 김경욱이 어려울때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일을 어떻게 하라고 하냐고 화를 내면서 내가
몇년전에 안성에서 김재운과장과 있던 문제를 상기시키면서 비열하게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휴일근무시 문제가 발생하면 안성 시험실로 출근하여 원격으로 처리 했다고 하자 그거에 대해서는 더 말을 못하면서 첨부터 김경욱를 못받는다고 하지 지금와서 이런문제를 발생시키면 어떻게 하냐고 이야기의 요점을 변경했다.
나이도 많은 놈(김경욱)이 휴일근무하나 못하고 짜증나서 과장 고육남한테 가서
내가 일을 알지도 못하는데 실장이 강제로 휴일근무를 시키고 있다고 고자질을 하니..그걸 들은 고육남
이놈은 전후사정을 파악도 안해보고 무조건 실장인 나한테 와서 호통을 치는 이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 이 돌아이 두 잡놈이 나를 미치게 하는구나 하며 올라오는 화통을 가라 앉히고
고육남에게 현상황에 그럴수 밖에 없음을 최대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 잡놈은 그걸 이해 하려 들지 않고 내가 잘못 처리해서 일이 이렇게 됐다고 내탓만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후에도 해당업무가 수원으로 합쳐지기 전까지 김경욱이하고 계속 일을 하긴 했는데..
김경욱이에 대해 휴일근무을 빼줬는지 아니면 그냥 시켰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것은 참으로 희한하다.
내가 고육남이의 일방적인 억지말을 받아 들이려다 보니 뇌회로가 잠시 쉰것은 아닐까?

경기 수원 남쪽으로 30여분 거리에 발안이라는 곳이 있다.
그지명이 낯설지 않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군데 갔다와서 내 주특기(선반)를 살려 아버지가 친척 형님벌 되는 분께 부탁하여 들어가 다니던
부평의 코리아 스파이서라는 회사가 있었다.
자동차 부품관련 회사로 꽤나 괜찮은 중소기업으로 기억된다. 
그 공장을 2년여 다니다 절삭유의 기름독으로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 그만두고 1년여의 독한 공부 끝에 
들어간 통신회사에서 첫 발령을 받은곳이 바로 발안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로 우리 부모님에게는 최고의 직장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니 그 기쁨은 
더할나위 없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다 그렇듯 즐거움은 잠시뿐 그 속에서 지지고 볶고의 인생살이를 하다보면 답답해
질때가 있다.
그 잘난 회사를 3~4년 다니다 보니 내부 배치에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 했다. 
통신으로 들어가 사람을 전기실에 배치 하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이때 마침 4급과장(원래 과장은 3급이다.)으로 온 사람이 곽노흥 이라는 인간이다.
언제나처럼 낙천적으로 몇년만 더 있으면 자기는 3급 달고 2급 달고 국장 그이상을 할수 있다고
떠벌리기 일수인 사람으로 생기긴 미련곰투가리 같았으나 실상은 천하의 모사꾼이었다.
와 이사람 능력이 엄청 좋은가..우리같은 사람은 답이 안보이는데 어찌 저렇게 자신만만 할수 있을까?
그자가 온지 얼마 안돼 나는 그자의 감언이설에 따라 전기실에서 사무실로 발령을 받아 가게 되었다.
자 이제 나도한계급 승차를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뒤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던 어느날 곽노흥이 자기 차 타이어를 바꿔야 한다며 나를 태우고 나갔다.
그때만 해도 너무나도 순진해서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타이어가 헌것도 아닌것을 광폭으로 바꾸는것을 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는거지 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의문을 품었을 뿐이었다.
그 사무실에는 나와 동기지만 몇달 늦게 발령 받은 천지석이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곽노흥이 나에게 사무실가서 열심히 일을 하면 보장해줄것 같이 말하던 
승차를 가지고 나와 천지석 사이를 오가며 경쟁을 시켜 무언가 잇속을 챙기려 했던것이다.
아마 내가 사회생활의 속물 이었으면 그 타이어값을 냈을 거고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천지석을 앞질러 승진을 했을것이다.
그런던중 곽노흥이 다른곳으로 발령이 나고서도 나와 천지석의 승진문제를 총무과장과 연락 하면서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는걸 알수 밖에 없었다. 
몇일밤을 고민하다 국장을 찾아가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제가 먼저 왔으니 승진을 먼저하는게 순리가 아니겠냐는 말을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국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후에도 지속적으로 곽노흥은 농간을 부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총무과장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이런자에게 돈을 줄것인가 아니면 승진을 포기할것인가에 대해 고뇌를 하다 스트레스가 쌓여
분노를 누를길이 없을 즈음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는 이런 천하에 모리배 자식 (부하 직원의 승진을 빌미로 돈을 받아 제 사리사욕을 채우고 위사람들에게 상납하여 자신의 부귀영화에 최선을 다하는 자)을 용서할수 없다는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당신 내가 승진 안해도 상관없지만 자꾸 전화해서 농간을 부리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신같이 높은 자리까지 올라기실분이 소탐대실 하시지 말고 나같이 말귀를 못알아 먹는 사람도 있으니
이번은 군말말고 빠져 계시라고 했다."
그런 몇일이 지난다음 내말에 당황 했는지 곽노흥이 대리님 대리님 하면서 전화를 했왔다.
인생이 즐겁고 탄탄대로인분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순 없었던 모양이다.
몇달뒤 나는 승차를 할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왜그리 참을수 없었을까?

내가 25년을 다닌 직장에서라면 할말이 정말 많다.
그렇치만 전부를 한꺼번에 말할 수는 없고 단칼로 어느 한부분을 짤라 그시점에 떠오르는 울화통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그 직장은 원래 기술직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승진한 몇일뒤 뜸금없이 영업 부서로 발령이 났다.
본부라는 곳에 전화를 해 내가 왜 기술자인데 영업부서로 발령이 났는가를 물어 보니 거기서도 잘 모르고
이번에 대대적인 승진과 조직 개편으로 많은 인사 발령이 있는 것으로 안다는 정도의 말뿐이었다.
평택 영업 부서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2년여를 했다.
그당시 평택 영업 부서는 몇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평택, 송탄, 안성, 안중 등 지역을 기반으로 팀을
구분했다) 문춘식 그 인간은 1팀의 팀장으로 있었다. 
1팀은 수석팀으로 각 개인별 판매량을 할당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고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직원들에게 많은 할당 물량을 강제 떠맡게 하였다.
물론 기술부서에 있을때도 말도 안되는 대량의 판매를 개인들에게 할당 하기 일수 였고 그 근거에 의거
고과와 승진이 좌지 우지 됐었다.
하지만 그것과 영업부서에서의 판매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는것이다.
영업부서가 체질에 맞지 않으니 다시 기술 부서로 옮겨 줄것을 상급자에게 수도 없이 요청 해서 결국
자리를 옮기 게 됐다. 
다시 돌아온 기술부서에서 일을 했다. 
해당일이 지역단위에서 본부 단위로 통합 되면서 평택에서 수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자리를 옮기는 날 총 4명중 나만 일을 마무리 하느라 남아있었고 3명은 일찍 수원으로 떠났다.
현장 개통 지원을 거의 마치고 퇴근 무렵즘 문춘식 저 개같은 인간이 갑자기 욕지거리를 하면서
파쇄기를 이사 가면서 가져갔다고 나한테 한바탕 큰소리를 내었다.
나는 가능한 정중하게 부장님 그건 제가 관리하는게 아니라 다른 파트에서 가져 간거니 저는 알수
없다고 여러번 말을 했는데도 욕과 화풀이를 쏟아 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미친놈의 새끼야 내가 한게 아니라는데 왜 나한테 지랄이냐고 하고 싶었지만
직장이라는 위계 질서가 있으니 최대한 꾸욱 눌러 참고 버텼다.
그놈은 지가 팀장을 하다가 부장으로 승진을 하여 마케팅 부서 전체를 총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파쇄기가 없어 졌다고 하니 직원들 앞에서 가오 세우려고 나를 타케팅 삼아 욕받이를 한것이리라.
추후 말을들어보니 문춘식이가 파쇄기를 가져간 부서의 장에게 전화로 지랄 염병을 하여 돌려
받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땅딸하고 꼼슬머리 곰보끼의 얼굴을 한번 뭉개주지 못한것이 울화통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무척이닌 슬프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설상가상 : 한방에 날려 보낼방법 없나요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다. 눈위에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려니 안좋음이
겹친다는 정도는 삼척동자도 금방 알아차릴수 있겠다.
지난달부터 집사람이 유치원교사 자격증과 학교 졸업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1달동안 다녔던 유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졸업과 동시에 자격증을 받으면 정식으로 취업을 할수도 있을거라
는 희망을 나타내기를 아내는 감추지 않았다.
나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만학으로 공부한것의 결실이 좋게 나타나는것
을 축하해주었다.
물론 몸이 약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지만 5년동안 힘들게 준비해온
일에 대한 집념을 어찌 축하 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에만 있는것에 대한 소외감으로 무력감 증세가
있는듯 해보였으니 잠시 일을 해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것이다.
호사다마라 좋은일에는 나쁜일이 끼기 마련인 것일까?
시작은 빈이 교복구매에서 부터 시작이 된듯하다.
올해는 빈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교복을 마련해야 하므로 중학교 배정일로부터 5일안에는 10%의 할인을
받을수 있다고 해서 교복 매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10%의 할인 서비스는 마감이 돼어 있었다.
5일이라는 계산법에 아내의 착오가 있었다.
할수 없이 원래의 가격을 다주고 무척이나 불친절한 구매를 했다.
아내는 무척이나 허탈해 했다.
그리고 어제 하루종일 회사일로 정신없이 보낸후 집에 오니 아내가
투덜거렸다. 교통사고가 나서 전화를 했더니 왜 통화가 안돼냐는거
였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아내는 조심하느라 운전을 했지만 정수기
회사 코디로 보이는 여자가 그대로 옆을 받아 버렸다는 거였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뺀돌이 같아 보였다는 코디가 잘잘못
응대에 묵묵부답이었다고 아내의 표정에서 분함을 읽을수가 있다.
비보호 사거리니 각자 보험사를 불러 처리 하였다.
아파트에는 정비소에서 보내준 렌트용 소나타가 주차되어 있었다.
오늘...
빈이 졸업식이 있었다.
휴가를 낸후 온가족이 축하를 해주기 위해 빕스에 들러 맛있게 점심
을 먹고 기분이 들떠 있었다.
딸들을 먼저 집에 올려 보낸후 인이 잃어버린 인이 피부약을 다시
사기 위해 중심상가 병원으로 갔다.
상가 뒷길에 주차를 했다. 아내가 이길은 이면도로라 주차단속 안한
다고 상가 아저씨가 말했다고 했다.
4층 병원에 올라 갔으나 점심시간 이다.
2시까지는 2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사이 아이들 영어학원 재등록과 빈이 중학교 배치용 시험 문제지를
구매했다.
약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피부과 약이 두가지 인데 어느게 얼굴용
이고 어느게 손목에 바르는 건지 구분을 할수 없었다.
집사람이 다시 병원으로 올라간 사이 갑자기 기분이 묘해 주차돼어
있는 차로 갔다.
어이구 두야...주차단속 안하다는 이면도로인데...
연필로 개발새발 쓴 주차 딱지가 앞면 유리창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
화가 났다.
울화통을 해소하기 위해 이리저리 주차단속 요원을 찾아 봤으나 보이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이 없어 제때에 일을 처리하지 못해 이런 일
들이 발생한게 아니냐는 속절없는 판단에
집사람에게 전화를해 화풀이를 했다.
오히려 손해만 나니 아르바이트 하지말라고 억지소리를 했다.
아내가 한숨을 쉬었다.
얼굴색이 좋지 않는 아내를 보니 갑자기 후회가 밀려 온다.
주차벌금이 뭐길래...우리 가족 분위기가 안좋아야 하는가...
몇만원에 죽고 사는것도 아닌데...
아내를 다독이며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맥주라도 한잔하면서 아내와 우리에게 다가온 설상가상
들을 한방에 날려 보낼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좀 해봐야 겠다.

눈과 머리속의 정화

 

오늘도 목구멍이 포도청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루 작업량을 소요시간량에 맞춰 작성을 해야 했다.
왜 이런것이 필요한것일까..
같은 부서내지만 일의 내용에 동질성이 전혀 없는데..
한곳의 인원이 줄어 갈때마다...
다른곳은 피해를 당해야만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어찌
직시해야 하는걸까?
그런 생각이 솟아 오르자 답답함의 레벨메터가 머리를
뚫고 올라갈거 같다.
불쌍한 사람들...어찌 짝궁들의 관리를 그리도 소홀히
들 했을까!
이제와서 뻔뻔하게 옆자리에 도움을 청한들 반겨줄이
누가 있단 말인가...
누가있어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이를 말릴수
있단 말이가..
초월적 영역침탈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지는건 불안정한
조직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 와해될지 모른다 할지라도 낯갈이가 심함을
탓할수는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다 못히 어지러울때...눈꽃
덮힌 산속의 짝궁으로 부터 사진 한장이 날아왔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어찌 아니 마음을 열지 않겠는가...
눈을 정화 시켜주는이 있으니 고마을 뿐이다.
옆자리에서 시샘을 한다 해도 나는 그저 고마을 뿐이다.
잠시나마 이 지리한 속박속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주니..
고맙지.
사랑해...미니-미
그리고 고마워...

 

 

아~ 우리는

 

우리는 상념이 멈출날이 없어라
우리는 조용히 앉아있길 바라나
저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으니

 

어찌할꼬나..
저찌할고나..
어화두둥둥..

 

나두 산행좀 가서 눈과 머리속
정화좀 했으면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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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하는, 불같은 성격

 

소시적에 욱하는 성질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거다.
젊은 혈기는 우리를 불의에 항거하라고 충동질 한다.
그러니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할수 있다는 격언을 망각한채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그결과로..
이가 부러지든지...
병원에 실려 가든지..
아니면 상대방에게 고소를 당하던지..
유치장 신세를 지던지..
하게 된다.
그러던것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처자식이 딸리게 되면 서서히 식어 가기 시작한다.
왠만한것은 속으로 눌러 참고 삭히게 된다.
좀 부당하다 싶은것에도 순응을 하는 착한 양으로 변모하게 된다.

오늘 추석에 쓸 흰떡을 만들기위해 묵을쌀을 불려 차에싣고 중심상가
떡집으로 향했다. 두어 바퀴를 돌았지만...차들이 계속 밀려들고
정차할 공간은 없다.
하는수 없이 차량이 뜸한 틈을 타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쌀을 내려
놓았다.
그사이 10여초가 흘렀을까...어느틈엔가 다가온 차량에서 경적을
울리며 난리다.
다급해 쌀을 길에 놓고 뛰어와 운전석으로 들어서며 조금만 참아주지..
라고 소리를 쳤다.
급하게 운전대를 돌려 차를 빼주려 하자...충분한 공간 사이로 차가
지나가면서 창문을 열여 소리를 친다.
"당신 뭐라고 했어..차를 길에 세우면 어떻게해..."
나보다는 한참 어리고 완력 있어 보이는 젊은놈이 발악을 한다.
순간 속으로 관세음 보살을 외치며..
"야 이자식아 큰길도 아니고...이면 도로에서 잠깐 양보좀 하면 안돼냐..
그리고 막말로 옆으로 충분히 지나갈수 있으면서 그렇게 하면 돼지
크략숀은 왜울리냐고..."
이런 생각이 들어지만...입은 분루를 삼키며 다른 말이 나온다.
"빨리 먼저 가시라구요..", " 네 먼저 가세요.."
헐... 몇년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마도 내려 멱살잡이를 했을것이다.
물론 길에 이중정차를 한건 내 잘못이 크지만... 길가에 주차된 차들과
무거은 쌀때문에 잠시 짐을 내릴수 밖에 없는 이웃을 배려해 
기다려 줄수는 없는것일까?
오늘 일진이 무척이나 사나울까보다...
이어서 들른 북수원 홈플러스옆 찜질방의 쫄면맛은 왜이리 입맛 떨어지
는것인지... 면발은 이미 쫄면이기를 포기한 상태고 양념은 행주 빤
물맛처럼 시큼하기만 하다. 도저히 먹을수가 없다.
동네 분식집 쫄면이 얼마나 맛이 있는것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찜질방 구내 식당 아주머니에게 이게 음식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운수 사나운날...무슨 꼴을 당할까 하는 생각에 꾸욱 눌러참고 말았다.
아~~ 푹쉬어야하는 휴일에 겪는 울화통은 일주일을 더욱 힘들게 할텐데..
어찌하나...
앞으로 일주일을 어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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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가 죽었다.

 

햄스터 송이와 둥이가 우리집에 온지는
2년전 수원으로 이사온 해 12월 겨울에 서수원 이마트에서 사왔으니
1년 10여개월이 되어 간다.
송이는 털이 하얗다 하여 눈송이에서...둥이는 털이 검다고 하여 검둥
이에서아이들이 붙혀주었다.
그동안 햄토리 밥을 마트에서 사다 주면서 그들의 생활을 살펴 보는
게 한동안의 낙이 었다.
특히나 두 딸들은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귀엽다고 아주 좋아 하였다.
그런데 오늘 낮에 얼마전부터 시원치 않아 보였던 둥이가 죽었다.
집사람이 아이들이 알기전에 나보고 와서 치우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 이었다.
저녁에 인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가 인터넷에 찾아 보니 햄스터 수명이 1년 반에서 2년여 정도며
그걸 사람 나이로 치면 70~80세라 말해주며 수명을 다한거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가슴에 슬픔과 자책이 밀려 오는듯 하다. 자신이 요즘
잘 돌봐주지도 않아다며 괴로워 하는것이다.
우유팩으로 상자를 만들어 그속에 넣어 저녁에 나가 나무밑에 묻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좋은곳으로가 갇혀 살지 말고 자유롭게 편히 지내라고
기도를 했다.

저녀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큰딸 빈이도 펑펑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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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눈물

 

어릴적 기억으로 가장 예뻤던 우리 작은고모
오래전 선산 벌초 있던날 새 아파트 육순잔치에
온가족 중부고속도로 올랐다
저속도로 탓에 고모 눈총 받던때가 새로운데...
고모!
어찌 그리도 빨리 가셨나요...
몹쓸병 걸리셨다는 말씀을 듣고도 빨리 찾아
뵙지 못하고...
내눈속 들보가 아파...
가시기 이틀전에야 뵈었네요
그날, 돌아와 하느님께 빨리 쾌차 하시길 기도
올렸는데...
그도 헛되이 전화벨 한번에 가셨나요
하늘도 맑던 얼굴 찌푸리더니..
벽제 가시는날..

참았던
굵은 눈물 하염없이 흘리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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