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 결여의 아픔
1980년대
현석이는 공고에 다니는 학생이다.
삭막하다는 공고를 다니게 된데는 현석이의 의지는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로 산업의 역군이 돼겠다 라든가
아버지의 역설인 어설프게 대학나와 노는것보다 취직 잘돼는 공고를
선택해서 가라고 했다던가
이런것들에 밀려서 간것이 아닐지..
하지만 공고는 현석이의 예술적 감각과는 전혀 맞지 않았고 아이들은
쇠덩어리만 만져서 인지 정서적 결격장애가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사소한것에 선배에게 칼을 들이 댄다던가..
인문계 고교에 비해 폭력 서클 가입인원이 많다던가..
지방계 학생이 많아 자취방에 모여 너구리를 일찍부터 많이 잡았다던가..
물론 극히 일부지만 대학을 가보겠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구파도 있지만
크게 부각 돼지는 않는 시절이었다.
현석이가 다니는 공고에는 선반이라는 공작기계과와 제도과, 주물을 다루는과
, 전기과 이렇게 4개가 있었다.
현석이는 그중에서도 제일 전망이 좋다는 선반 공작 기계 다루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최고회전속도 1800 RPM에 둥근쇠를 물리고 바이트라는 공구로 깍아낼
때면 쾌감과 스트레스 해소가 돼기도 했지만 튀어 나오는 쇳가루에 손, 얼굴을
데기 십상이었다.

한번은 바이트를 만들기위해 쇳톱질을 하는데 짝궁인 웅천 유학 출신 대열이가
도와준다고 해서 잡고 있다 오른손가락 검지가 짤릴뻔 하기도 했는데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잡고 병원으로 뛰어가 다행히 꿰매는 수준에서 마무리 한적
도 있었다.
학교다니면서 최고의 단짝은 해석이 였는데 선반 과는 2반으로 섞여봐야
거기가 거기인 아이들이었다.
그와의 웃기는 에피소드를 보면
재료역학 책 공부에 쇳물 상태도가 나오는데 공부는 안하고 그걸 개고기
상태도라고하며 둘이 킬킬 거리며 재미 있게 놀았다.
이는 아마도 담당 선생님이 웃기게 생긴걸 개고기 선생님으로 별명 지어 놓고
부르다 보니 담당 과목에 까지 이입돼서 였다.
또다른 경우는 머리는 상당히 좋았으나 뇌를 다치고 나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샤이선생님 시간에 아이들이 떠들어도 아무말 하지 않는 선생님에게
심심하시니 껌이나 씹어 보시죠 했다가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기도 했고..
선반 공작기계를 자동으로 해놓고 다른걸 신경 쓰다 조작부가 부러지자 이를
둘이 고민 끝에 본드로 붙혀 놓았다가 친구들이 실습 선생님에게 일러받쳐
또 죽도로 기합을 받기도 했다.
학교 다닐때면 이렇게 재미있게 다녔는데 그래도 현석이가 어울리는 애들은
해석, 대열 등 몇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방학이 돼면 사회성이 결여증세가
심해져 그나마도 끊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해석이가 바로 옆동네로 이사오면서 방학때도 무척이나 자주 놀러오자
혼자 자거나 명상(?)을 하거나 산으로 운동을 갔다 오는게 다였던 현석이
에게는 감당하기가 버겁게 돼었다. 한마디로 귀찮아진거였다.
한번은 해석이가 놀러오자 갑자기 짜증이 백퍼센트가 된 현석이가 화를 막내며
다시는 놀러 오지 말라고 퍼붇고 말았다.
그래도 그후로 몇번인가 해석이가 놀러는 왔지만 서먹서먹 해진 관계는 회복을
하지 못하고 졸업후 연락이 두절돼고 말았다.
지금도 친구가 갑자기 문득 보고 싶어지는 날에 현석이는 자신이 사회성 결격
장애가 있는게 아닌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건 아닌지
많은 고민과 번뇌에 빠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