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특별한 주제로 해볼까 해! 바로 유부녀가 바람을 피는 심리상태에 대해서 얘기해볼게. 너도 궁금하지? 그래서 내가 좀 알아봤더니, 신기한 이야기가 나왔어!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부녀들은 결혼한 후에 바람을 피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심지어 연구에 따르면, 결혼한 여성들 중에서 40%가 바람을 피워본 경험이 있다고 해! 어떻게 생각해? 엄청나지 않아? 왜 유부녀들이 바람을 피는 걸까?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해. 첫째로는 결혼 생활에서의 만족도와 관련이 있는데, 결혼 생활이 다소 지루해지거나 충돌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해. 둘째로는 새로운 경험을 찾거나 긴장감을 즐기기 위해서라고도 해. 결혼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새로운 자극을 찾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 같아. 그래서 바람을 피는 것도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지? 마지막으로는 자아 확인을 위한 행위로 바람을 피는 경우도 있다고 해! 결혼 생활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다시 확인하고 싶거나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해. 기분 좋아지려고 하는 거지 뭐야? 우리가 생각하기에 결혼 생활은 언제나 일상적이고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법이지! 유부녀도 때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릴을 느끼고, 자신의 매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법이니까 너무 놀라워하지 않길 바래!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너는 어떻게 생각해? 좀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마음의 평화와 만족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럼 오늘도 재밌는 시간을 보내자!
매니저가 상현역 근처 지식산업센터에서 근무할때의 일이다. 이곳은 지식산업센터 이지만 조경면적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지하1층 내부 마당 구간과 1, 2, 3층 그리고 5층 건물간 연결부위 그리고 각동 옥상에 관목과 교목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하층 기차조형물 근처의 억새종류는 매니저가 낫을 가지고 자르고 잡초를 뽑는등 수시로 관리를 해서 마당층 음식점들의 민원이 발생치 않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외의 층은 아직 2년이 돼지 않아 예초 작업등을 조경식재 업체에 요구해 처리할 예정 이었다. 하지만 키퍼는 나날이 크고 있는 풀들을 두고 볼수 없어 엔지니어들을 시켜 예초기를 돌려 제거하기로 하였다. 엔지니어들이 5층 호실앞 잔디를 깍던중 예초기날에 자갈이 튀어 호실 외벽 인테리어 유리에 살짝 잔금이 가고 말았다. 물론 노련한 조경관리자라면 그런 부분에서는 포장으로 돌이 튀지 않도록 막고 작업을 하는게 당연했지만 키퍼가 잠깐 보지 않는사이에 민원이 발생한것이다. 그곳 업체의 관리부장은 상당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호실쪽 유리부분의 잔금은 예전에는 없던것으로 이번 예초작업시 발생했으므로 관리소에서 책임지고 교체해줄것을 강력히 요구해 오고 있었다. 키퍼는 인테리어 업체에 유리 종류와 교체시 비용을 알아보고 건물보험으로 신속하게 교체를 하였다. 엔지니어들은 키퍼로 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한달뒤 조경식재 업체에서 와 예초작업을 하는데 빠를뿐더러 입주사로부터 민원도 전혀 없었다. 그리고 외곽조경으로 베롱나무가 많이 식재 돼어 있었는데 추위에 약한 수종으로 11월경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보온재를 감아줘야 했다. 첫해는 조경업체에서 보온재 작업을 해주었지만 2년째에는 매니저가 인터넷으로 보온재를 구매해 엔지니어들에게 나무에 감을것을 지시 했지만 생각했던것보다 재료가 상당히 많이 들었다. 보온재의 추가구매에 대한 고민끝에 매니저는 나무가지의 굵은 부분만 보온처리를하고 잔가지는 그냥 두기로 하였다.
안성구포동 성당에 여러해 동안 미사 참배를 위해 다녔지만 진정한 종교인으로서의 감흥은 특별하게 없었다. 그러다 안성성당 백주념기념사업으로 오신 비교적 젊은 신부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미사를 집전하실때 다른신부님에서는 알수 없었던 진중함으로 몸이 떨려오는 전율을 느낄수 있었다. 영성체전 그분이 밀떡을 양손으로 들고 그리스도의 몸 할때 적당히 끊고 이어주는 무게감 있는 목소리톤은 나를 옭아 매는 구속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했다. 이부분을 나나 그렇게 여기는가 하고 말했을때 집사람도 같았다고 동조를 해주었다. 그신부님이 다른곳으로 전근을 가신후의 미사에서는 그런 그리스도의 게시가 솟아오는듯한 진행을 찾아볼수 없었다. 카리스마 신부님을 찾아 전화를 해보니 송탄에 있는 효명고등학교로 가셨다고 하는데 그곳의 미사에 우리는 참석을 하지 못함을 알고 꽤나 아쉬워 했었다. 요즘 보면 하느님을 믿는것이 아니고 목사나 신부를 따라 신자의 수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하는데 카리스마 신부님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겠다 싶다.
두번째의 감동은 TV에서 하던 나는 가수다였다. 임재범이 여러분을 열창하면서 무릎을 꿇고 내가 만약 외로울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여러분 할때 또다른 종류의 전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임재범 또한 끊고 맺는 힘있는 목소리로 TV 너머에 있는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인생을 살면서 이러한 묘하고도 야릇한 압도감을 느낄수 있는경우는 몇번 돼지 못할것인데 또다시 그런 전율을 느낄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대대에는 4개의 중대가 있고 각 중대의 1개소대가 일주일씩 오분대기조로 들어가 부대의 외곽초소에 보초를 서고 있었다. 벤또도 고참이 되어 분대장 완장을 차고 오분대기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분대기조 분대장은 수시로 홍익대학교 미대 다니다온 성질까다로운 현역 병장놈한테 보고를 하러 행정반을 드나들어야 했는데 평상시에는 그 병장놈 혼자 있는게 대다수였기 때문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긴급한 보고사항이 있어 행정반 문을 열고 필승 경례를 하고 들어섰을때 행정반 책상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계급을 살펴 보니 대령이다. 어 우리 대대장 계급은 소령인데 그럼 그는 연대장인가... 아니 연대장이 왜 거기서 나와.. 연대장이 왜 거기서 나와아아 트로트 가사가 머릿속을 감돌며 너무나 놀란 벤또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보고사항도 머리속에서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그대로 행정반에서 나와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그가 너무 놀란 나머지 빼먹은 절차가 있었다. 행정반에서 나올때도 경례를 하고 나와야 하는데 그걸 잊어 버린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군대라는게 실수라는걸 용서하지 않는데 아닙니까.. 아마도 그 현역 병장놈이 일러 받친건지 뺀질이 중사 새끼가 분대장을 찾았다. 그러곤 분대장이라는 놈이 행정반에 들어왔다 나갈때 연대장이 있는데 인사도 안하고 나갔다고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는것이었다. 분대장은 자신이 그렇게 까지 잘못한건지 판단이 잘 안서지만 그냥 얻어 맞고 말았다. 그후로 벤또는 되도록 이면 이 뺀질이 중사새끼 주변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아니 말이야 들어갈때 인사하고 들어갔고 너무 놀라 그대로 인사없이 나왔다고 그렇게 맞아야 한단 말인가.. 인사한번 빼먹은게 뭐 부대 군기를 상징한다는 건가.. 에이..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죽도로 맞은건 너무 억울해서 벤또는 안성에서 뺀질이 중사새끼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거라고 벼르고 다녔지만 어떻게 된것인지 그놈을 시내에서 만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100킬로 행군 날짜가 잡혔다는 소식이 파다했다. 벤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난감해 하고 있었다. 어쩌지 못하는 행군의 날은다가오고 바로 그날이 되고 말았다. 아침 여덟시부터 대대원들이 천만다행인 단독군장에 줄을 맞춰 정문초소를 나섰다. 벤또를 비롯한 중대원들은 코스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하고 그저 앞사람을 따라서 발길을 내딛을 뿐이었다. 가다가 배식을 먹고 걷고 또 걸었다. 짐작으론 용인에서 안성으로 이어지는 시골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두워도 행군은 계속 되었다. 눈발이 내리는 밤에 열시가 넘어가면서 십분간 휴식시간이 되자 물집잡힌 발을 군화에서 해방시켜볼 생각조차 못하면서 벤또와 방위들은 얼어붙은 논바닥에 들어 누웠다. 벤또는 십분간이 그렇게 꿀맛인지는 처음알았다. 아니 꿀맛이 아니라 잠시 눈감았다 떴는데 행군의 휘슬이 울렸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일곱시경에 위병소를 통해 부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퇴근을 하였다. 그런일이 있은 몇일후 위문공연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연병장에 줄을 맞춰 앉았고 이름은 없지만 노래를 잘부르는 가수라는 사람들의 꾀꼬리 목소리를 감상했다. 아쉽게 끝나는가 했는데 이부 순서가 남았다고 한다. 누군가 담요를 펼쳐들고 왔고 그 뒤에는 하늘하늘 휘날리는 옷을 입은 어여뿐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가 펄럭펄럭 춤을 추는가 하더니 휘익 하니 겉옷이 벗겨 나갔다. 그녀의 날씬한 몸매에 대대원들은 모두 감탄을 마지 않았다. 그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채 내무반으로 걸어 들어 가고 있는데 누군가 큰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들아 엉덩이 뒤로 빼지 말고 똑바로들 걸어.. 하하하 이소리는 남자라면 다 이해가 가실듯 하다. 그렇게 힘든 부대방위 생활의 한획이 저물고 있었다.
어릴적 안성천 부근 솥공장 옆에 살때는 장마철만 되면 하수도에서 불어난 물로 집안에 물이 차는 물난리를 겪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구질구질한 훍탕물에 물이 빠져도 바닥에 흙이 남아 또다시 물로 씻어 내야만 했다. 그외 다른 장마철 에피소드로 우리 옆집에 장희석이가 살았는데 그의 형이 하수도에 빠져들어가는걸 아버님이 잡아 구해 주셨다. 하지만 그집 부모들은 고맙다는 말대신에 자기 자식 야단치는데 치중했었다는 내용은 어머니에게 여러번 들은 적이 있다. 부모님께서 물난리가 지긋지긋 해서인지 다음 이사는 높은 지대로 해서 집안으로 물이 들어 오는 일을 다시 겪지는 않았다. 올해들어 7월 장마철에 무지막지하게 비가 내려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네 어릴적에 비하면 어느정도는 나라에서 대비를 하고 있기는 할것이다. 비내리는 지난 주말에 집안에 갇혀 이런저런 이야기를 궁시렁 대기에도 지쳐 서호로 나서 보니 빗줄기가 약해지고 있어 산책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단 꽤나 있었다. 여담으로 평일에 시간이 난다면 수원시에서 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 해보는것도 좋을듯 하다.
벤또가 용인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부대 단기사병으로 배치를 받았다. 물론 라똘의 3중대로 배치를 받았고 그중에서도 다들 꺼려하는 포분대에 배속이 되었다. 그곳에는 60밀리 박격포와 대전차 화기인 90밀리 무반동총이 주력으로 있었는데 벤또와 졸려가 무반동총을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평상시에는 소총만 가지고 다니면 됐지만 무슨 훈련자 붙은 시기에는 무반동총을 짊어지고 다녀야한다는건 정말 무지막지한 일이었다. 실제로 백리인지는 재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백리행군을 한다고 할때는 포분대 전원이 무척이나 사기가 죽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소총만 메고 다녀도 힘든데 17킬로그램에 달하는 무반동총을 어께에 메고 가라는건 그냥 죽으라는거나 마찮가지가 아니겠는가 중화기를 메고 간다 아니다를 반복하다 결국에는 단독군장으로 행군을 시행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또한번 식겁한것은 갑자기 연대에서 무반동총 실제 사격 훈련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벤또와 졸려 그리고 다른 중대 무반동총 담당들은 몇일동안 무반동총 훈련을 받고 결전의 그날 어딘지 알수 없는 장소로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우리는 차례대로 무반동총을 거치하고 발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앞에서 뺀질 동기가 멀리 있는 표적을 향해 총을 발사 했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벤또 차례다. 표적에 대한 조준을 마치고 졸려가 총알을 장전하고 벤또의 헬멧을 두번 두들겼다. 벤또는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발사를 했고 멀리 있는 표적이 들썩 하더니 쓰러져 버렸다. 우리는 표적이 명중 했음을 확인하고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번 팀이 표적을 정확히 맞추어 양쪽 나무기둥이 그대로 있고 가운데만 뚫린것을 보고 벤또 팀보다 한수 위라는 지적에 그들은 바로 실망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어찌됐던 성공적인 무반동총 실제 사격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모두가 바랬던 포상휴가는 대대장의 묵언수행으로 개풀뜯어 먹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어제 오후 시간에 가족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혼자라는 말을 강조하면서도 결국에는 몰려다니며 아귀처럼 먹어대는 예능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런종류의 프로그램을 싫어하니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간판 주자는 젊은여자 편력이 있는자로 얼마전에 결별로 떠들썩 했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저자는 다시 여자 사귀고 있나라고 말을 하니 듣고 있던 세상 표준적인 삶을 사는 딸래미가 파르르하며 잘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왜 욕을 하냐고 했다. 허억..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있는데로 속력을 내서 타다가 돌뿌리에 걸려 날아 쑤셔 박히는 고통이 이럴것이다. 다른표현으로 하면 자유로운 감정이 솟구쳤다 차갑게 냉각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다. 감정의 순환이 흐르다 동맥경화 현상으로 흐르지 못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몇일전 집사람과 TV를 보다 부부가 나와 울고 있는모습을 보고 뭘잘했다고 우냐고 했다가 에이 하면서 나를 돌아 째려보며 탄식을 하는 집사람소리에 위와 같은 감정의 막힘 현상을 이전에도 겪었었다.
여기서 이야기 하자면 TV의 예능 프로그램은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보는것이다. 그러다 보니 거기 나오는 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충분히 힐난을 할수 있는것이다. 공동의 매체에서 그를 댓글로 비난하여 공황장애에 걸리게 하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가 대중들에게 미친놈처럼 떠든것도 아니다. 그저 집에서 바보상자 보다가 스트레스 해소용 심심풀이 땅콩으로 잠시 씹었을 뿐이다.
예전에 형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이러한 스트레스 해소용 코드가 정말 잘맞았다. 첩혈쌍웅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바보같은 축구선수단들이 모두 죽고 있다는둥 남들이 들으면 한심한 소리들로 입장단을 맞추며 스트레스 해소를 충분히 할수 있었다.
물론 나와 형님처럼 코드를 맞춰달라는건 아니다. 내가 TV를 보면서 그저 중중거리면 아 코드가 달라 그런가보다 하면 될것을 돌뿌리가 되어 넘겨 뜨려 마음에 충격을 주지는 않았으면 하는 작은소망이 있다.
부대방위 생활이 어느정도 익숙해 지고 있던 시기에 대대와 연대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를 따라 유격훈련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대대장이 일장 연설을 하였다. 그때 부터 전부대원들은 나무를 잘라서 외줄다리 타잔나무타기등 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벤또는 궁금증이 일었다. 아니 방위가 유격훈련을 한다는말을 들어 보질 못했는데 이건 누가 할려고 만드는거냐고 물어보자 사단내 현역들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중대장 라똘에 있었다. 만들어 놓기만 하고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건 잘못된거라는 그의 신념은 대단했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라똘이 중대원들을 연병장에 집합 시켰다. 그리고 칠에서 팔미터 되는 높이에 통나무로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구조체를 걷는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하부로는 그물을 만들어 놓아 떨어져도 죽거나 크게 다칠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벤또는 고소공포증이 대단했다. 줄서서 기다리는것 만으로도 다리가 후들 거렸다. 점차적으로 줄이 짧아지면서 벤또의 순서가 다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라똘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벤또가 슬쩍하니 줄을 이탈하여 훈련을 마친 병사들 뒤로 숨어 들어갔다. 그때 매의 눈으로 벤또를 살펴보던 아래기수 졸려가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로 중대장님 벤또일병님이 훈련 안받고 살짝 빠졌데요. 그소리에 놀란 벤또가 졸려의 입을 손으로 막고 말았다. 여기서 그 아래기수의 별명이 왜 졸려 였을까 그는 벤또가 무반동총의 사수였을때 부사수를 맡았기 때문에 둘이 친할수 밖에 없었다. 기수를 떠나 둘은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그의 눈에 쌍커풀 수술이 잘못 된것처럼 너무 진한 쌍커풀이 있어 눈이 마치 졸린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벤또는 그를 졸려라고 정답게 부르곤 했었다. 아무튼 벤또는 순간적인 그의 기지로 무서운 훈련을 무사히 넘길수 있었다.
단기사병으로 부대에서 몇달 근무한 어느날 이었다. 다음주 부터 예비군들이 들어 오고 우리가 같이 저수지 부근에서 야영훈련을 한다고 했다. 벤또는 이게 무슨 풀뜯어 먹는소리인가라고 하면서 아니 방위들이 예비군 동원훈련을 같이 한다니 이거 뭔가 핀트가 안맞는거 아닌가라고 중얼거렸다. 야영훈련전 고참들이 중대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한마디씩 했다. 예비군들은 대부분은 결혼했으니 우리보다 기운이 없을거니 같이 훈련하면서 쫄거 아무것도 없다는 근거없는 농섞인 소리들을 해댔다. 벤또는 나참 이자식들도 긴장을 하긴 하나보네 헛소리를 하는걸 보니라고 했다. 예비군들이 들어오고 같이 조를 짜서 낮시간동안은 도보훈련을 하고 야간에는 텐트를 치고 저녁 급식을 받아 식사를 한후 방위와 예비군이 번갈아 가면서 보초를 서기로 결정이 났다. 벤또가 밤 두시부터 세시까지 보초를 선후 다음 당번인 예비군 텐트에 가서 이름을 부르며 깨웠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반복적으로 소리치고 흔들었으나 예비군은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다. 벤또의 소리를 듣고 있던 고참이 소리쳤다. 야 기운없는 놈들 한대 치고 보초 서라고 하고 가서 자 벤또는 그말대로 예비군을 칠수는 없고 다시한번 보초를 서야 한다고 흔들어 깨우고 자신의 텐트로 가서 피곤해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으로 전투 식량을 먹으며 보초가 정상적인 루틴으로 돌았는지 물어 봤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벤또는 생각했다 야 이거 아무도 보초를 안선거 아녀 진짜 전시였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거 같은데 라며 예비군이 필요하긴 한건가를 생각 해보았다. 그러다가 설마 진짜 전시상황이면 예비군도 군기가 바짝 돌아와 현역때의 기본기가 살아 나겠지 않겠나라고 중얼거려 보았다.